메뉴 건너뛰기

박원석 은혜가운데 30년이.........

2008.03.03 19:44

박원석 조회 수:718 추천:39

은혜가운데 30년의 결혼생활이.... 1977년 대전 침신대 1학년 2학기 10월 즈음에 금요일이었다. 그때 대전에 한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을 때였고 담임목사님은 부흥강사이셔서 매주 부흥회를 인도하러 다니셨다. 그 주간에 목사님은 진주로 부흥회를 가셨다. 지금의 부흥회는 신자들의 형편에 맞는 부흥회 처럼되거나 교회의 무슨 일이 있을 때 만하는 행사처럼되어버렸지만................ 그때 1970년대 부흥회는 월요일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하는 것이 상례였다. 금요일 오전에 학교로 전화가 오기를 곧 바로 기차를 타고 오늘 저녁집회를 참석하는데 특송을 해야 한다고 담임목사님의 전화내용이었다. 혼자 오지 말고 교회 김 모 전도사와 같이 오라고 하셨다. 수업을 마치고 진주행 기차를 타고 한 참 내려가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였다. 저녁집회시간에 목사님의 소개와 더불어 두 신학생이 찬양을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청중 들 중에 한 아가씨가 나를 선보았다고 하셨다. 가끔씩 목사님은 나에게 빨리 결혼하여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하셔서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물론 부모님들도 장남이니 결혼하는 것에 대하여 찬성하셨다. 매일 저녁 9시에 신학교 강당에 가서 결혼에 대하여 주님의 인도를 구하였다. 그러기를 1년 후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도하셨다. 토요일 아침에 그 아가씨와 아주 짧은 시간을 가지고 만남을 가졌다. 왜냐하면 토요일 새벽집회가 마치고 곧 아침을 먹고 처음 기차로 대전으로 올라가야 하기에 아주 짧은 시간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곧장 대전으로 올라왔다. 그때 만난 아가씨가 지금의 아내인 오두리자매이다. 그때만 해도 아내는 불같은 믿음으로 활활 타고 있었고 또 나도 신학교 1학년인지라 뜨겁게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왔을 때였다. 그 후 우리는 1978년 2월 21일에 목포의 모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대전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을 때가 신학교 2학년이었다. 오두리선생은 신학생의 부인으로 고생을 참 많이 하였다. 생활고로 인한 어려움과 환경을 통한 것들까지도 교회사무원으로 일하면서 어린이 과외를 하였고 나는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를 사역하면서 결혼생활을 계속하였다. 결혼 30주년을 맞이하고 보니 참으로 주님의 은혜가 크고도 많았다. 그사이에 세 자녀를 주셨고 사역에서도 많은 것을 경험하였으며 지금은 더욱 말씀에 깊어지게 하신 하나님에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아내의 헌신적인 섬김으로 우리 가정에서 나는 건강을 회복하고 세 자녀가 각자가 자기의 일을 성실하게 하도록 성장하였으며 벌써 결혼을 할 나이에 이르렀다. 생각하면 모든 것이 주 하나님의 인도요 역사하심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정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가족이 인도받으며 주님을 의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지만 하루하루 인도받으며 살아간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면서(마6:34)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7-23 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