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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석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하고

2008.03.29 16:25

박원석 조회 수:722 추천:38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은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손이 잡히거나 자신이 확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안되면 믿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가시적으로 나타나야만 안심해 한다. 그래서 실적이 있어야 하고 흔적과 결과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감각적이고 짜릿하고 무엇인가 성취감을 가져야 만족하게 되는 것이 이시대의 사람들의 일면이다. 그래서 나타난 것으로 평가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꼭 지금의 모습만은 아니다. 예수님시대에도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와서 무엇인가를 보여주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12:38-39에서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즉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보는 것을 구하고 있다. 이 세대는 보는 것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만족함을 누리고 있다. 값나가는 미술품이 그렇고 잘 지어진 집이나 아파트가 그렇고 아름다움을 평가의 가치관을 삼는 인간들은 사람의 성을 상품화하여 보는 것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일이 근래에 자주 일어나고 있다. 보는 것을 전부로 살았기에 안타가운 일이 일어났던 실제가 이미 에덴동산에서 일어났다. 창3:6에서“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고 하여 보암직하였던 과실이 먹게 하였고 탐스러움을 보게 하였다. 보이는 것으로 전부로 알게 된 결과는 에덴에서 쫓겨나야만 하였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에서 사람이 보이는 것으로 산다면 하나님도 잊게 되고 창조의 본질과 더불어 복음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육에 의한 삶을 살게 되고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과연 보이는 것이 전부인가?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생명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다 . 믿음도 보이지 않고 마음은 더더욱 볼 수 없다. 하나님도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계시다. 고후5:7에서“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 하여 보는 것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자요 보이는 것으로 사는 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보는 것으로 사는 자들이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사는 자요,                            소망으로 사는 자요,                            사랑으로 사는 자요,                             예수님으로 사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