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의 말
2008.05.09 19:55
물고기의 말
김형술
물고기의 혀는 천 개
혹은 달
가만히 혀를 뱉어 모래 속에 묻는
물고기의 모국어는 침묵
끊임없이 물결을 흔들어
날마다 새로운 청은(靑銀)의 바다를
낳아 키우는
물고기 입 속은 꽃보다 붉고
물고기가 묻어놓은 말들 속에서
일어서는 물기둥
뭍으로 오는 힘찬 물이랑
바람
세상에서 가장 큰 말을 가지고도
아무 말 하지 않는
물고기의 혀는 불
물 속의 투명한 불꽃
-시집『물고기가 온다』문학동네
김형술 시인
9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 『의자와 이야기하는 남자』, 『나비의 침대』등 다수
현재 『월요시』,『시.바.다-금요일의 시인들』회원
<1>-어머니는 모든 걸 꽃피우신다/김형술-
금붕어가 야위었구나
강아지 발톱도 깎아야겠고
난분은 방에 들여라 일렀지 않았느냐
나팔꽃 아이비 물나무 들일랑
비님 오시는 날 바깥 구경 좀 시키지 않고……
이대로 두면 모두 돌아가시고 말겠다.
두 주일만에 들리신 어머니
짐보따리 미처 풀기도 전에
집안 구석구석 잊고 있던 것들 먼저 챙기신다.
산 것들을 이리 허술히 하다니 죄도 큰 죄다
말갛게 닦아 신은 흰고무신 아랑곳 않고
짐보따리 여기저기 넣어 오신 깻묵이랑 흙거름으로
시들어가는 것들에게 자꾸 말을 거신다.
늙은이와 고목은 자리를 옮기면 못 쓰게 되는 법,
며칠만 더 하고 잡는 말문 단호하게 막으시며
빈보따리를 들고 헹하니 시내버스 오르신다.
어머니 다정한 말들 모두 알아 들었는지
거짓말처럼 집안은 생생하게 반짝이고,
창틀을 타고 오르며 줄기줄기 진청색 꽃 피워
아침을 불러내던 나팔꽃, 슬며시 고개 내밀어
어머니 돌아간 골목길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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