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이 없다
2008.05.03 05:39
문인수
서쪽이 없다/ 문인수
지금 저, 환장할 저녁노을 좀 보라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떴다, 얼른
현관문을 열고 내다봤다, 지척간에도 시차 때문인지,
없다, 15층짜리
만촌 보성아파트 107동
기역자 건물이 온통 가로막아 본연의 시뻘건 서쪽이 없다
시뻘겋게 녹슬었을 것이다
그 죄 사르지 않는 누구 뒷모습이 있겠느냐
눈물 훔쳐 물든 눈자위, 퉁퉁 부어오른 흉터 같은 것으로 기억하노니
아름다운 여분, 서쪽이 없다
말하자면 나는 이미 그대 사는 곳의 서쪽,
이 집에 이사 온지도 벌써 십년 넘었다, 인생은 자꾸
한 전망 묻혀버린 줄 모른다. 몰랐다. 다만
금세 어두워져, 저문 뒤엔 저물지도 않는다, 어여쁜 친구여
무엇이냐, 분노냐 슬픔이냐 그 속 뒤집어
널어놓고 바라볼 만한 서쪽이 없다.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1985년 <심상>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옴
대구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수상
시집 『늪이 늪에 젖듯이』,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뿔』,『홰치는 산』,『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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