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꽃다리에 대한 기억/
2008.05.09 19:27
박수현
수수꽃다리에 대한 기억/
수수꽃다리 숨결이 꽃불처럼
도서관 앞길에서 로터리로 번지는 벤치에 앉아도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영문의 이니셜로 기록된 너가 누구인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갈피갈피 얼굴 없는 그림자가
누런 일기뭉치에서 걸어나와 내 손을 잡는다
지난 시간들이 신열을 앓으며 다리 위에서 출렁인다
너는 누구인가?
너무 싱그러워 때론 현기증도 나던
수수꽃다리 꽃 피어오른 오월의 어느 날,
떨리는 목소리로 불러보아도
몇 마디의 방백만 허공에 울릴 뿐
펄럭이는 너의 옷자락은
무심히 무대 뒤로 사라진다
길을 놓쳐버린 젊음만 무대 위에 쓸쓸하고
짧았던 축제도 막을 내렸다
불이 꺼지고 징소리는 느릿느릿 길을 떠난다
징의 긴 울림 속 너의 그림자를 따라
아직 끝나지 못한 일기를 쓰노라면
내 안의 모든 구석이 될 풍경 하나
설핏 새벽 잠든 머리맡에
뜨거운 한 발쯤 내디뎌 줄 것인가
본명 : 박현주
경북 대구 출생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과 졸업
2003년 <시안>으로 등단
현재 [겨울숲], [온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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