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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제자도의 부르심

2010.12.31 22:21

구재천 조회 수:677 추천:40


* 페르디난트 한 지음. 신약성서신학 1. 김문경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 2007의 p 573-75쪽의 내

용입니다. 독일 성서학자의 글이라서 딱딱하지만 성경구절을 찾아가면서 읽으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제자도로의 부르심                         p, 573-574


1:16-18, 19 이하와 2:14의 소명사화는 예수의 권위있는 말씀과 인간의 준비가 예수의 말씀과 인

격을 신뢰하게하고, 제자도를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지상의 것에 대한 집착은 10:17-

22의 부유한 자의경우처럼 율법에 신실함이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제자도를 불가능하게 한다. 제

자도는 예수의 인격과 그의 길을 무조건으로 따르는 것이다. 1:15의 강령적인 요약에서 복음을 믿

는 것(πιστευετε εν τωευαγγελιω)을 언급하고, 복음서 저자가 11:22-24에서 산을 옮기는 믿음에

관한 말씀으로 믿음의 주제로 되돌아가지만 예수 전승에서와 같이 제자도의 모티브는 제자 됨을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예수의 제자도는 8:34-38이 드러내듯이 또한 고난의 제자도일 수 있다. 그

러나 십자가를 지고 생명을 헌신하는 것에 대한 준비로서의 제자도는 미래에 구원을 보장 받는다.

이는 10:23-31에서 보다 상세하게 설명한다. 모든 시험과 위험에서 견디는자는 누구나 13:9-13에

따르면 종국적인 구원을 받게될 것이다. “끝까지 견지는자는 구원을 받으리라”(και εσεσθε μισουμενοι υπο παντων δια το ονομα μου ο δε υπομεινας εις τελος ουτος σωθησεται 13:13b).


제자 공동체

예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제자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 제

자 그룹에서 예수는 열둘을 택하였다. 그들 중에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이 더해졌고, 그가 수

장이다.(3:13-19) 그들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한다. 그들 주위에 제자들이 모인다. 제자

들과 열둘이란 개념은 마가에서 서로 동일하지 않으며, 오히려 보다 크고 개방된 그룹과 보다 작

은 그룹이라는 의미로 구별한다.마가는 이러한 관점에서 부활 이전의 예수 전승의 내용을 유지한

다. 기독교인의 존재 형태는 제자도와 제자 됨에 있다. 제자 공동체는 열두 제자 그룹 주변에 함께

모이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다.

....

제자들의 과제

 

3:14 이하에 따르면 열두 제자는 이중적인 기능을 갖는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있어야 하며, 예수는 말씀 선포와 귀신축출을 위하여 그들을 파송한다.(και εποιησεν δωδεκα ους και αποστολους ωνομασενινα ωσιν μετ αυτου και ινα αποστελλη αυτους κηρυσσειν)  예수와 지

속적인 생활 공동체와 파송의 과업이 본질적이다. 열두 제자는 예수의 과업과 그의 사역에 참여한

다. 따라서 부활 이전에 그들이 선포를 계속 수행해야 할 책임을 갖는다. 이러한 내용을 6:7-13의

 파송설교의 틀 안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행동의 규칙과 함께 예수 자신의 전권에 참여함을 의미하는 권능이 주어진다.(비교 7, 12, 13a)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을 준비가 함께 관련된다.(9:35, 10:29)

이러한 과업은 예수의 죽음 이후에 우주적인 영역을 포괄한다. 13:10에 ‘먼저 즉 재림이전에 제자

들에게닥치는 위협과 핍박에 직면하여 복음이 모든 백성 가운데 선포되어야한다.( και εις παντα

τα εθνηπρωτον δει κηρυχθηναι το ευαγγελιον) 전 세계에 걸친 복음의 선포라는 전제하에서

마가복음의 표제어인 복음의 시작(αρχη του ευαγγελιου)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용어를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가능성이 주어진다. 이 용어는 세례요한과 예수의 수세 및 시험에 관한 1:2-13의 도

입 단락을 위한 부분적인 표제어이다. 또한 이 표제어는 이 복음서 기술된 모든 것들을 ’복음의 시

작'으로 이해하며 그 복음이 계속하여 선포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마지막 설명이 장점을

지니며 다음 내용을 의미한다. 세례 요한의심판 및 회개설교와 시작하는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예

수의 선포가 복음의 시작이며, 이 복음은 13:10[먼저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에 따르

면 예수의 재림까지 전 세계에 전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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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한 신약성서신학, 603-605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며 형제단인 제자 공동체

마태는 마가와 마찬가지로 제자도와 제자 됨의 실존에 기울인다. 그러나 마태의 경우 교회론적인 개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복음서 저자 가운데 그가 유일하게 에클레시아, 즉 공동체 혹은 교회라는 개념을 사용했기 때문만이 아니다(167:18, 17a, b) 제자 공동체에 관한 그의 진술들이 철저하게 교회론적으로 정향되어 있다는 데에도 근거한다.


마태가 제자들의 모델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은 28:19a의 선교 명령에서 특히 밝히고 있다. 그 구절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 라고 기록한다. 24:14에 언급된 유앙겔리온 테스 바실레이아스의 선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그들이 제자가 되게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 목적을 위해 외치는 것이 제자도의 본질을 이루는 일부이다.(참조, 4:18-22, 16:24-28)


물론 마태는 믿음/믿다에 대한 진술에서 마가보다 긴밀하게 제자도 사상과 연결되어 있으나, 요한복음에서처럼 둘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믿음과 제자도를 결합시키지 않고 산발적으로 믿음에 대해 언급한다. 이 같은 사실을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 8:10)또는 나를 믿는 소자 18:6, 참조 8:13, 9:28이하, 15:28) 등과 같은 진술들이 보여준다. 나아가 마태는 적은 믿음, 6:30, 8:26, 14:31, 16:8)이라는 명확한 표현을 사용한다. 믿음은 각각의 경우 하나님이나 예수의 권세에 대한 신뢰의 행동이고, 제자도는 그분과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마태에게서 열두 제자의 표상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마태는 제자들을 열둘과 동일시한다. 마가와 무가와 다른 경우이다. 마가와 누가에게서 제자들은 더 확장된 그룹을 의미하고 열둘은 숫자상으로 한정된 그룹을 말한다. 이 열두 제자가 그 숫자로써 전체 공동체의 대표자들이 되고, 그들은 또한 10:2에서 사도와 동일시된다. 이러한 열두 전승과의 결합은 마테에게 있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상이 본질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16:1의 에클레시아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새로운 하나님 백성이라는 견해는 마태복음 21:33-40의 악한 포도원 농부 비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 포도원이 다른 이에게 주어져야 한다(마1 12:9b)는 진술에서만 첨예화되는 것은 아니다. 마태복음 21:41의 제때에 실과를 바칠 만한 농부들에 관한 진술 이외에 21:43에 다음과 같이 언급된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로써 예수를 거부하고 27:25에 나오듯이 눈이 멀어 자기 저주의 말을 내뱉은 유대인들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여 ‘천국의 열매’를 맺는 다른 유대인들 사이에 구분선이 그러진다. 그러나 이 내용도 보편적인 반유대적 경향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이는 물론 이방 기독교인들의 통합을 긍정하는 유대 기독교인들 편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유대인 내부의 논쟁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하나님의 공동체는 23: 8의 근본적인 진술에서 드러나듯이 형제단으로 이해된다.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형제들 사이의 구분이 없어진다. 이 같은 사실을 23:9-12에서 모든 존칭을 거절하면서 강조한다. 반대로 이것은 제자들이 그들의 선생인 예수와 긴밀한 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편에 서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적은 믿음에 대해 경고할 때 제자들의 몰이해와 실패가 결코 마가복음에서와 똑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마태의 제자상은 훨씬 더 긍정적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명한 것을 실재로 제자들이 행할 경우에 해당된다.(비교, 5:20과 7:24-27) 제자와 제자 공동체의 실존에 대해 상세하게 특징짓는 내용을 산상수훈 가운데 5:21-48의 반대 명제에서, 가난한 자를 도와주라는 지시에서, 6:1-18의 기도와 금식, 6:19-34의 염려하지 말 것, 7:7-11의 확신 에 찬 간구에서 밝힌다. 여기서 제자들을 통한 의의 실현은 행동뿐 만아니라 진정 내적 자세와 기도 할 때에 하나님과 완전히 결합되는 것을 포함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산상 수훈 가운데 주기도문이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