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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예수[크래그 에반스]

2011.01.10 20:43

구재천 조회 수:927 추천:39

 

새물결플러스(hwpbooks)
카페에 있는 아주 요긴한 자료라 생각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20세기 초에 종교사학파의 거두였던 빌헬름 부세트(Wilhelm Bousset)가 그의 역저 <주 그리스도>(Kyrios Christos)에서 제시한 명제에 반론을 제기하고 그 증거를 제시한 책입니다(아래 사진 가운데 왼쪽 사진이 빌헬름 부세트이며, 오른쪽 사진은 그가 쓴 <주 그리스도>의 속표지입니다. 20세기 초에 나온 책답게 모든 내용은 독일 고유 문자체인 프락투어<Fraktur>체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부세트는 자신이 쓴 책에서 초대교회 공동체는 예수를 하나님(, )으로 섬기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초기 기독교 역사의 두 번째 단계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이방인이 주축이 된 그리스도인 집단이 인간도 신으로 숭배했던 헬라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아 예수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고 숭배하기 시작했으며, 바울도 이런 영향을 받아 예수를 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그는 1세기 후반 내지 2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예수가 곧 주이시며 그 분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신앙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자리를 잡아갔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점에서, 초대교회를 주축으로 한 원시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헬라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원시 기독교 집단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부세트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부세트는 그가 쓴 <주 그리스도>에서 팔레스타인의 원시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바울 사이에 안디옥, 다메섹, 다소에 있었던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존재했었다고 전제합니다. 그런 다음, 종교사의 관점에서 볼 때 아주 중대한 의미를 가진 발전이 이 이방인 공동체에서 이루어진 결과, 비로소 이 이방인 공동체가 미래의 메시아 예수를 현재 의식을 통해 경배하는 그 공동체의 주님으로 섬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Wilhelm Bousset, Kyrios Christos(Go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67), 75, 90.]. 이와 관련하여 그가 말하는 내용을 한 대목 인용해보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퀴리오스()가 첫 이방인 공동체에서 의미했던 것을 분명하고 생생하게 이해한다. 주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삶을 다스리셨다. 특히 공동체가 전개한 하나님 섬김, 그러니까 의식을 통한 섬김(Kultus)이 그런 다스림을 보여주는 예다. 이 공동체는 퀴리오스를 중심으로 함께 모여 믿음으로 그 분을 경배했고, 그 분의 이름을 믿는다고 고백했으며, 그 분의 이름을 부르는 가운데 세례를 받았고, 주 예수의 식탁에 모였다. 또 열심을 다해 외치며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탄식했다. 더 덧붙이자면, 한 주의 첫날을 주께 바쳤고 사람들은 즉시 그 날을 주의 날(kuriakē hēmera)로 규정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며 이적을 행했고 귀신들을 몰아냈다! 이렇게 한 몸을 이룬 그 공동체는 그 머리이신 퀴리오스()를 중심으로 모여 의식을 통해 그 분에게 경배를 바쳤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한 몸이라 말하고 그 머리가 그리스도이시라고 말하는데, 이 경우 바울은 늘 이렇게 함께 모여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을 이야기할 때, 이 성전을 신자들의 의무이자 목표로 제시할 경우에도 무엇보다 이런 공동체를 염두에 둔다.(위 책, 88-89)

이처럼 부세트는 예수를 퀴리오스()로 섬긴 신앙은 예수의 직계 제자들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유대 공동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며, 종교사의 관점에서 발전이라 규정하는 일들을 통해 이방인으로 이루어진 원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처음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헬라어 퀴리오스는 유대인들이 여호와(야훼) 하나님을 부르던 히브리어 아도나이(내 주)의 번역어입니다. 예수를 주로 불렀다는 것은 그 분을 하나님과 같은 반열에 계신 분으로 믿고 섬긴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사도행전 2:36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설교합니다. 이미 베드로는 하나님이 예수를 주의 자리로 높이 들어 올리셨다는 것을 청중 앞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예수가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뒤, 열흘 정도가 지났을 때였습니다. 이 성경 기록이 진정한 역사를 그대로 기록해 놓았다면, 예수의 제자들이 구성원이었던 초기 원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예수를 주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았다는 부세트의 주장은 그릇된 주장이 아닐까요? 부세트 같은 이들은 이 사도행전 기록이 예수를 주로 섬기기 시작한 이후에 기록된 후대의 창작물이며 베드로는 실제로 그런 설교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우리는 현대 신학서에서 이런 표현들을 많이 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허구를 기록해놓은 것입니까?

그런데 허타도 교수는 이런 부세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 예수를 주, 곧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는 일은 이미 첫 그리스도인 공동체(유대계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첫 그리스도인 공동체) 때부터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교수는 어쩌면 이런 예수 섬김이 예수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직후부터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허타도 교수는 이런 현상을 두고 역사상 유례나 선례가 없는 일이 화산 폭발하듯 일어났다고 표현합니다. 이처럼 예수 섬김이 유대계 그리스도인 공동체 내부에서 아주 일찍부터 나타났기 때문에, 바울의 기독교도 헬라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유대계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첫 신앙 공동체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첫 유대계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이후에 나타난 그리스도인 공동체들 사이에 분명한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역설하는 셈입니다. 허타도 교수는 여기서 자신이 역사적 방법론이라고 말하는 접근법을 활용하여, 구약 및 신약 성경과 외경 및 고대 문헌 자료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갑니다. 결국 이런 방법을 통해 허타도 교수는 특히 신약 성경이 기록해놓은 내용들이 역사 속에서 일어난 진실이라는 것을 입증해갑니다. 허타도 교수가 역사적 방법론을 통해 증명한 사실이 결국 신약 성경의 진정성을 인정하는데 힘을 보태줄 수 있겠다고 제가 이 책 <옮긴이의 글>에서 설명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허타도 교수의 이런 주장은 다시금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허타도 교수는 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주 하나님으로 섬기며 하나님께 예배하듯 예배했다고 주장하면서 신약 성경의 관련 본문들을 증거로 제시합니다. 그런데 그의 막역한 친구인 제임스 던 교수는 바로 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염두에 두고 근자에 펴낸 그의 저서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예배했는가?>에서 허타도 교수의 주장을 신중한 태도로 짚어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던 교수는 이 책에서 허타도 교수의 주장을 먼저 간단히 소개하고 이어 허타도 교수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리처드 보컴 교수의 주장을 역시 간단히 소개합니다. 던 교수에 따르면, 보컴 교수 역시 팔레스타인 유대 기독교가 처음부터 예수를 이스라엘이 섬기던 한 분 하나님의 독특한 정체성을 공유하신 분 내지 그 정체성 안에 포함되는 분으로 예배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던 교수는 이 두 학자의 주장을 놓고, 성경 본문들이 제시하는 전체 그림을 살펴봐야 하며, 허타도 교수와 보컴 교수가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성경 본문들보다 더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는 본문들을 함께 검토해봐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합니다[James D. G. Dunn, Did the first Christians Worship Jesus?(London: SPCK, 2010), 3-5.]. 던 교수는 이 책을 이 주제를 놓고 자신과 대화하는 보컴 교수와 허타도 교수에게 헌정했습니다. 부세트의 <주 그리스도>가 나온 뒤로 한 세기만에 다시 불붙은 이 논쟁(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섬겼는가?)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갈지 흥미롭기만 합니다.

 

부세트의 저서 <주 그리스도>는 그 엄청난 깊이 때문에 영미권에서도 1970년에야 번역되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독일 신학의 영향력은 아직도 막강합니다. <주 그리스도>가 나온 지 한 세기가 흘러가서야 비로소 단행본으로 된 반론이 나왔다는 점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신학사에 남을 귀중한 자산입니다. 더욱이 이 책은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쓴 책이라는 점에서, 신학사의 한 흥미로운 주제를 대중의 눈높이까지 끌어온 공헌자이기도 합니다. 이미 이 책은 이 책의 주장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서양은 신학으로 신앙을 표현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책은 성경의 진정성을 믿는 신학 진영에서 보더라도 역사적 방법론을 통해 성경이 증언하는 내용이 진실임을 증명해 줄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출발점으로 하여 앞으로 전개될 궤적을 계속 따라가 본다면, 아주 흥미로운 신학 공부이자 신앙 훈련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주 흥미롭고 귀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방대한 신학서이기에 독자 여러분이 부담스러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옮긴이로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사랑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독자들이 그렇게 해주셔야 진실로 한국 교회가 좀 더 깊은 신학의 토대 위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펴내는 한 미력(微力)한 출판사가 앞으로도 그 사명을 신실히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많은 사랑을 받는다면, 이 책이 나오게 된 계기가 된 부세트의 <주 그리스도>도 한국어로 선을 보일 수 있을 것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낳은 후속 신학서들도 선을 보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진정 예수는 우리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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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새물결플러스에서는 2011년 처음으로 독자들께 내놓을 책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는 데요. !
<만들어진 예수>라는 책입니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바트 어만의 <예수 왜곡의 역사>, 도마복음서와 유다복음서 문제 
등의 온갖 설+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과연 우리 신앙의 토대인 예수님의 역사성에 대해 속 시원한 대답을 기다렸던 분들께 
어렵지 않으면서도 권위 있는 답변을 해 줄 매우 흥미롭고 깊이 있는 책입니다.
저자 크레이그 에반스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유다복음서를 일반 대중에게 최초로 공개할 당시에
그 연구 위원으로 위촉받은 학계의 권위자입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는 바트 어만(회의적 비판자), 도널드 시니어(가톨릭 성서학자) 등
각계의 가장 대표적인 전문가들을 불러모아서 연구 위원을 구성했습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로 유명한 세계적인 학자들이 몸담고 있는 클레어몬트 대학원대학교에서 
최고의 학자들 아래서 박사학위를 마친 그는 역사적 예수 연구, 유대교, 고대 문서 등의 분야에서
학문적 엄밀성과 탁월성으로 크게 인정받는 학자입니다. [제작년 인가 한권 샀어요]
Craig A. Evans - 2008 - 290 페이지
Is there a more sober approach to finding the real Jesus? Commenting on such recent releases as Bart Ehrman'sMisquoting Jesus,James Tabor'sThe Jesus Dynasty,Michael Baigent'sThe Jesus Papersand theGospel of Judas,for which he served as 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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