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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2 12:02

박원석 조회 수:694 추천:43

 

10년10월17일생활즉예배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면 흔히 듣는 용어는 예배이다.

 

누구든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 귀에 들리는 용어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을 찾는 일과 예수님을 알아가는 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용어들이 믿음과 소망이나 사랑일 것이다. 그밖에도 많은 용어들을 우리는 들먹인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매일 우리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일상생활에서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한다. 이러한 것은 바로 성령에 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배라는 단어는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고백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생활이다.

 

예배는 엎드린다. 존경을 돌리다. 봉사한다. 섬기다. 교제의 의미도 있지만 문자적인 의미로 가치를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돌리다. 란 의미도 있다고 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예배는 경건과 의식을 포함하는 존경하는 삶 전체를 포함한다.

 

예배에는 여러 가지 의식을 동반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다. 형식과 행위에 의한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심을 드러내신다. 호6:6에서“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화답하는 관계 즉 교제를 원하시는 것을 보여주신다. 잠15:8에서도“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하심을 보아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막힘없는 관계를 바라신다.

 

이러한 일에서 사울은 사무엘선지자로 호된 질책을 받는다. 삼상15:22에서“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 하시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격식을 갖추고 예배에 맞는 의식도 중요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시51:17에서“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고 하셨다.

 

예배를 예수믿음과 구분하는 이중적 구조에 익숙한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결코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예배 따로, 생활 따로 교육되어지고 전통과 유전되어진 교회생활로 인하여 예배는 퇴색되어지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와 생활을 분리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순간순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비추어 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믿는 자의 삶이 바로 생활이고 예배이다. 성도의 예배가 바로 일상의 삶이다.

 

언제부터인가 “주일을 성수해야 한다.”라는 교육으로  인하여 주일만 그것도 “11시 예배만 잘 드리면 된다.”라는 외침은 그리스도인들을 이중적으로 만들어 가게 하였다고 본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일요일은 주일, 평일은 죄요일이라 하였던가.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구원에 감격에 지낸다면 날마다 예배요 함께 모여 교제에 기대하며 기다릴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구원에 감격된 삶을 사는 것이 .........

 

성령에 의하여 사로잡힌 삶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

그것은 바로 말씀에 사로잡힌 삶이다. 말씀에 예수 생명이 있고 길이 있고 진리이기에 그래서 요8:31에서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이 중요하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산다. 내가 알들지 모르든지 깨닫든지 못깨닫든지 주앞에 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난 자의 삶이요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주님의 뜻하신대로 이끌어 가신다.

 

예수님을 이것을 요4:24에서“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영이시고 말씀이시기에 우리에게 만유를 통해서 드러내신다. 우리가 진실된 마음과 영에 속한 자로 살고 있다고 하신다. 이것이 바로 생활 즉 예배를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