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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과 디아코니아

2010.12.23 22:01

관리자 조회 수:888 추천:31

'고요한 밤'과 디아코니아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Stille Nacht Heilige Nacht)'

입력 : 2010년 12월 14일 (화) 16:51:18 [조회수 : 1210] 홍주민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    


'고요한 밤 거룩한 밤(silent night)'은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불리는 캐럴 중 하나다. 이 노래의 발상지는 오스트리아의 음악 도시 잘츠부르크에서 약 20km 떨어진 오베른도르프(Oberndorf)라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필자는 몇 년 전 유럽을 방문했을 때 잠시 그곳에 들른 적이 있다. 모차르트의 출생지이기도 한 그곳의 명성은 현대에도 이어져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이기도 한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런데 해마다 이 대림 절기에 곳곳에서 몰려온 이들이 이 마을을 가득 메우는데, 그들은 바로 '고요한 밤'의 태동지를 방문하기 위한 이들이다.

       ▲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발상지, '고요한밤성당'.
  
1800년대 초 잘츠부르크 인근 마을에 요셉 모어(Joseph Mohr)라는 가톨릭 부사제와 프란츠 그루버(Frantz Gruber)라는 교사가 있었다.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모어는 이 마을의 성 니콜라오 성당에서 1817년부터 1819년까지 부사제로 재직했다. 그루버는 이웃 마을인 아른스도르프에서 1807년부터 1829년까지 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성 니콜라오 성당에서 오르간 반주를 맡아 일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얼굴을 자주 맞대며 일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1818년의 크리스마스 축제를 얼마 앞두고 당시 26세인 모어 사제는 그루버 선생에게 축복이 가득한 성탄 전야에 모여들 마을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무엇인가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그루버도 좋은 생각이라며 찬성을 했고, 이 제안은 곧 실행에 옮겨졌다.

모어 사제는 모든 사람들이 조용하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그동안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느꼈던 감정을 토대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Stille Nacht Heilige Nacht)'으로 시작되는 노랫말을 만들었다. 이 노랫말은 6절로 되어 있는데 1절은 독일어로 다음과 같다.

"Stille Nacht, heilige Nacht! Alles schläft, einsam wacht Nur das traute hochheilige Paar. Holder Knabe im lockigen Haar, Schlaf in himmlischer Ruh', Schlaf in himmlischer Ruh'."

모어 사제는 이 노랫말을 성탄 전일인 12월 24일 그루버 선생에게 전하면서 두 명의 솔로, 그리고 기타 반주를 곁들인 합창에 맞도록 곡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노랫말을 받고 난 그루버는 그의 탁월한 음악 소질을 발휘하여 그날 밤으로 곡을 만들었다. 성탄 전일의 조용하고 거룩한 뜻을 담고 있는 가사에 어울리는 곡이었다. 모어 사제는 이 곡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 노래는 두 사람의 공동 노력으로 오베른도르프의 성 니콜라우스교회에서 곡을 만든 당일인 12월 24일 저녁 예배 도중에 처음으로 불렸다. 물론 참석한 신도들로부터 많은 갈채를 받았다.

모어 사제는 기타를 치면서 테너를 맡고 그루버 선생은 베이스를 맡았으며 교회 합창단이 후렴을 불렀다. 그 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이 교회에서 불리면서 점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전 세계에 보급되었다. 1937년 8월 15일 성 니콜라오교회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노래를 만든 모어 사제와 그루버 두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고요한밤성당(Stille Nacht Kapelle)'으로 명명되었다.

이 '고요한 밤'은 현재 130개 언어, 193개 버전으로 번역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이 캐럴을 널리 확산시킨 사람은 독일 디아코니아 운동의 선구자인 요한 힌리히 비헤른(Johann Hinrich Wichern, 1808~1881)이라는 사실이다. 비헤른은 이 캐럴을 경건주의의 고향이자 디아코니아 운동의 발원지였던 할레의 프랑케 재단에서 알게 된다. 1844년 비헤른은 함부르크에서 자신의 디아코니아 실천의 장인 라우에하우스(그룹홈)의 찬양집에 처음으로 이 캐럴을 싣게 된다. 1877년까지 이 노래는 5판을 출판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는데 한 번 펴낼 때, 수천 부씩 발간하였다고 한다.

       ▲ 독일 디아코니아 운동의 선구자이자 고요한 밤 노래 가사를 개작하여 확산시킨 요한 힌리히 비헤른.
  
  이러한 확산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은 디아콘(Diakon)이었다. 디아콘이란 우리 한국 개신교에는 생소한 개념인데, 독일이나 세계 교회에서는 아주 일반화된 기독교의 직제이다(디아콘이 되려면 디아콘 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디아코니아 신학을 4~5년 배운다). 초대교회에는 말씀에 봉사하는 사도와 사회적 약자들에게 봉사하는 즉 디아코니아를 담당하는 디아콘이 있었는데, 비헤른은 바로 이러한 디아콘 제도를 근대에 도입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현재 독일 교회나 기독교 사회 복지 시설 그리고 사회 선교 현장에서 전문성과 고백성을 담지한 디아코니아 실천가로 일하고 있다.

흥미 있는 것은 비헤른이 독일어 권에 이 캐럴을 확산시킬 때 자신이 가사를 조금 변경하는데, 일례로 요셉 모어는 일반적으로 '예수'를 가사에 썼는데 비헤른은 '그리스도'를 덧붙인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 캐럴의 제목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으로 알고 있지만 비헤른은 제목을 '그리스도 안의 기쁨'이라 붙인다. 지금 독일 찬송가나 헤른후트 형제단 찬송가는 비헤른의 가사를 싣고 있다. 여기에 그 원문을 번역해 본다.

1.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모두들 잠든 밤 외로이 주의 부모만 깨어 있네. 곱슬머리의 예쁜 아기가 하늘의 안식 가운데 잠들어 있네. 하늘의 안식 가운데 잠들어 있네.

2.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천사들의 할렐루야로 목동들이 먼저 알게 되었네. 멀고 가까운 곳에서 크게 소리가 들린다. 구주 예수 나셨다. 구주 예수 나셨다.

3.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하나님의 아들 방끗 웃으며 은총의 입으로 사랑이 피어나네. 이제 구원의 시간이 우리에게 온다. 구세주 나셨도다. 구세주 나셨도다.

이 땅에 평화와 화해를 전해 주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 예수,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예수, 대결과 심판이 아니라 사랑과 소통을 위해 오신 예수, 그분의 오심을 기뻐하고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절기이다. 하지만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도 주님의 뜻과 반대에 서 있다. 다툼과 분쟁 그리고 대결을 향한 목청이 점점 드세어 간다. 이번 성탄에도 어김없이 길거리와 교회에서 '고요한 밤'은 울려 퍼진다. 하지만 마음의 문을 닫은 이들이 더해 가는 세상 한복판에서 그리스도는 외로이 골목길에서 성탄 절기에 헤매고 있지 않으신지, 우리의 눈이 사랑의 날카로운 눈이 되어 돌아볼 일이다. 섬기는 이로 오신 그리스도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의 모습으로 이번 성탄에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홍주민 / 한신대학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