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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일기 1610 : 전인 치유의 한 마당이 되라

2014.10.30(목) 

 

사단법인 한국상담연구원(원장 김홍찬) 주최

‘크리에이팅 러브’ 부부캠프 Conjugal Creating Love-, 2014.10.30(목)-31(금)

 

개회예배 설교

 

전인 치유의 한 마당이 되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전서 5:23).”

 

제가 존경하는 어느 원로 목사님께서 내 앞에서 자신의 목회 여정을 돌아보면서 이런 염원을 토로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젊어져서 목회할 기회를 얻는다면, 세 가지를 해보고 싶다. 하나, 성경만을 붙들겠고, 둘 심리학 등을 공부해서 먼저 전인 치유를 받은 후 목회에 임하겠다.” 나머지 하나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분은 목회를 참 잘하셨던 목회자였습니다. 그런 분이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책(성경)의 사람이 되고 싶고, 심리학을 공부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분의 세대에는 오직 믿음뿐이었지, 상담심리학은 한국 교회에 거의 소개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 세대는 주로 김기동의 귀신론에 당시의 목회자들이 혹해서 몰려다닐 때였습니다. 그 원로 목사님도 아들 부부가 의사인데도, 자신은 김기동 귀신론이 이단 시비가 붙을 때까지 열심히 그 세미나에 쫓아다니신 분이었고, 김기동 류의 축사를 목회 사역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활용하셨었습니다. 그랬던 분이셨기에 그분은 다시 태어나 목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만일 주어진다면 상담심리를 공부해 보겠다는 만년 결핍의 염원을 발했습니다. 사실 그분은 일평생 공황장애를 알아 오셨습니다.

 

지난 몇 해 전, 나는 우리 교단 잡지 ‘활천’ 편집자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두 권의 책을 건네면서 그는 그 책들에 대한 비평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책들은 당시 기독교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였습니다. 한 책은 방언의 은사 재발견에 관한 책이었고, 다른 한 권은 “심리학은 반 기독교적이다”라는 이원론적 인간관이 지배하던 시기에 내밀었던 메스를 다시 내민 칙칙한 책이었습니다. 전자는 새삼스런 진부한 이야기였고, 후자는 시대 역행적인 논쟁을 부추기는 책이었습니다. 그 후자 심리학에 대한 반 기독교적인 학문이라고 떠들어 댄 책은, 고(故) 옥한흠 목사의 아들 옥성호 씨가 쓴 책이었습니다. 나는 그 두 책을 사서 보고나, 빌려서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 내용은 안 읽어 봐도 비디오였습니다. 그런 책을 사서 보거나, 읽는 다는 것은 시간 낭비라 생각 됐습니다. 하여 나는 그 책들을 읽지 않고 비평 아닌 비판을 했습니다. 200자 원고지 20~30매 정도를 그냥 써 내려 갔습니다.

 

그 복음과 심리학의 상관관계에 대한 내가 쓴 비평의 글 중 일부입니다.

 

“전략(前略)

그 책이 시대역행적, 시대착오적 논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육과 영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던 전통신학이 이젠 전일체로서의 몸을 말하는 성서해석학에 대해 말씀 안에서 승복한 시대다. 이미 신학과 심리학이 그 긴밀한 관계설정을 위한 치열한 논쟁을 끝내고, 상호 보완하는 복음적 관계로 발전해 가고 있는 이 시대에 그는 “심리학은 반 기독교적이다”라고 떠들고 있다. 한때, "기독교는 코미디다" 라며 냉소를 날렸다는 그가, 느닷없이 등장해 이젠 반쪽 복음으로 냉소를 날리는 형국이다. 이렇게 뒤죽박죽, 신앙적, 학문적으로 소아병적 사고에 머물고 있는 그가, 툭, 생각 없이 내놓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분별력 없는 이 땅의 크리스천들의 필독서가 된, 독서 풍토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병약한 교회의 영적 현실이 서글프다.”

 

그렇습니다. 복음과 심리학은 역사적 논쟁을 거쳐, 상호 보완 복음적 관계로 발전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상담심리를 통해 전인치유를 받은 후, 다시 목회에 임해보고 싶다는 원로 목사님의 이야기가 바로 그거입니다.

 

여기 성경에 나오는 두 사람을 복음과 심리학이라는 관점에서 주목해 봅니다.

 

먼저, 베드로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를 성격이 매우 급하고, 성질이 더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성도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런 목사를 만난 것이 불행이었습니다. 헌물의 결단을 온전한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 욕심 때문에 성령을 속인 죄를 그들 부부가 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일 성품이 온유한 목자를 만났었다면, 그런 무참한 형벌은 면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해 봅니다. 목사 잘못 만난 경우입니다. 전인 건강에 문제가 있는 목사를 만난 겁니다.

 

둘, 여기 온전히 전인 건강을 누린 분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세례요한을 가리켜 “사람이 낳은 자 중 제일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 사람이 낳은 자 중 제일 큰 자라는 말은 전인적으로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 배경은 그분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압니다. 세례 요한의 성장과정을 기록한 누가복음 1장 80절이 그 배경 말씀입니다. “아이가 자라며(육체) 심령(혼과 영)이 강하여 지고.” 세례 요한은 영과 혼과 육이 균형 있게 자란 건강한 아이였습니다. 전인 건강을 누린 이였기에 그분은 사람 기근, 먹거리 빈약한 “빈들”에 거해도 끄떡없는 전인 건강한 자였습니다. 동시에 그는 그의 사명의 생애 인기 절정의 자리에서 성큼 내려 와, 그 자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넘겨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목 베임 당하는 그의 잔혹사(殘酷史)조차 그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이었습니다.

 

이처럼 복음과 심리학의 관계는 복음적으로 밀접합니다.

 

우리는 작금 전인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전인 치유라는 말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인이라는 용어가 튀어 다니게 된 역사적, 신학적 배경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20세기 후반 신학의 공헌 때문입니다. 전통신학은 영혼과 육체라는 인간학적 이원론에 젖어 있었습니다. 플라톤 철학에 영향을 받아 육체는 영의 감옥이라 여겨 왔습니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에서야 우리는 전인(全人)을 성서에서 발견 했습니다. 입체적이고, 통전적 연관성을 지닌 구약성서 언어를 발견했고, 히브리 사상은 인간 존재가 분리된 이질적 요소들로 구성된 복합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단일적 존재로 파악했습니다. 이는 전인(全人)으로서의 인간 발견입니다. 이렇게 전인(全人)이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 된 인간이 전일체(全一體)로서의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목회학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가 바로 그거였습니다. 이런 전인의 발견으로, 우리는 자연스레 전인 치유를 말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전인 치유 사례집입니다.

 

성경에 나타 난 인간 구원은 전인적 구원 사상입니다. 구체적인 실례를 우리는 쉽게 성서 인물의 삶을 통해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구원해 내신 출애굽 사건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체적인 기아와 기갈을 채워 주시려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동시에 그들의 신앙적, 인격적 삶을 위해 십계명을 허락하신 사건은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히 보전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배려입니다.

 

그리고 전인적 건강회복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 준 엘리야와 까마귀 사건. 3년여의 기근 속에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를 먹이시고, 탈진한 엘리야에게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로 육신적인 탈진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동시에, 이슬 위에 내린 세미한 음성으로 영적 확증을 계시하신 사건은 하나님의 인간 개개인을 향하신 고치시고 싸매시는 전인적 치유의 말씀입니다.

 

신약에 이르러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에 육체적으로 온전치 못한 이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동시에 죄사함을 선포하신 숱한 사건들은 영적인 고뇌가 동시에 육신적인 고통이며, 육신적인 문제가 동시에 영적 문제 인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적인 결핍과 영적인 절망에 동등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으심을 보여주는 전인 사역적의 전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태복음 4:23).”

 

즉,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은 영적 회복과 함께 죄의 결과로 나타난 육체의 회복도 포함합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마가복음 16:15-18).”

 

그리고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의 차꼬를 풀어 주시고, 옥문을 열어 주신 사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신적 얽매임에서 기적적으로 풀려났으나 탈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죄수 탈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중압감에 짓눌려 자살하려던 간수를 안심시키고 위로하며 신앙으로 격려했습니다. 이같은 빌립보 감옥 사건은 갇힌 자가 가둔 자를 돌보는 건강한 전인으로서의 사역자 상을 나타내 보여준 대표적인 예라고 여겨집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전인 건강을 누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 말씀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전서 5:23).”

 

사단법인 한국상담심리연구원에서 목회자들을 위해 복음과 상담심리를 접목하려는 귀한 시도를 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부디, 바라옵기는 이 세미나에서 뭔가 한 자 배워서, 그 어디다 써 먹으려고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배운 것만 제대로 써 먹기도 바쁩니다. 이 세미나를 통해 성령께서 허락하신 은총으로 먼저 자신이 전인 치유를 받는 기회와 장을 삼으시길 바랍니다. 전인 치유의 한 마당이 되시기 바랍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합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6-0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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