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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강해설교(5):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마 6:11)

2009.06.06 12:51

윤사무엘 조회 수:922 추천:25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감람원 교회                                                                 윤사무엘 목사


본문말씀:  마 6:9-13, 출 16:1-14

요    절: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출 16:4)

주    제:  매일 먹을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자. 하늘의 만나를 생각하며 영적 만나도 함께

              먹자

교 독 문:  25번(시편 103편),  예배의 부름: 요 6:33-35,   예전색: 초록색

찬    송:  39장 (개회),  85장,  284장(설교후),  451장(축도전)


주기도문 강해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마 6:11)입니다. 네 번째 기원입니다. 하나님 사랑에 대한 내용이 끝나고, 이웃 사랑 내용의 첫 부분이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마 22:40)고 주님께서 둘째 계명을 주셨는데, 내 몸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 사랑할 자격이 있습니다. 여기서 세 마디를 조심하십시다. “오늘날”입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입니다.


먼저, 오늘날에 대해 살펴보십시다. 어제 많은 음식을 먹었다고 오늘 먹을 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참으로 불안합니다. 우리 몸은 그날그날 필요한 양양분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이 매일 필요합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처음 토라를 받고 나서 40년이 지나 모압 평지에 있을 때입니다. 그때 다시 하나님의 토라를 상기시키는 설교를 하면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신 5:2-3)고 했습니다.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비전과 계획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날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입니다.


그 다음 단어에 “우리에게”입니다. “나에게”가 아니라 나와 너, 우리 공동체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것입니다. 공동체(가족, 친척, 교인, 이웃) 일원 가운데 한 사람이 배고프면 모두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함께 나눠 먹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배고픔을 느끼면 모두 배고파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이뤄야 합니다. 다음 간구도 우리입니다.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을 우리가 용서해 주듯이 우리를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용서도 나 혼자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입니다. 나는 용서 받았는데 이웃이 용서 받지 못했다면 안됩니다. 나도 용서받고 너도 용서받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단어는 “일용할” (daily) 양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공기는 매 순간 필요합니다. 어제, 아니 5분 전까지 호흡했다고 지금부터 5분간 호흡을 중단하면 죽고 맙니다. 우리 몸의 순환계통, 신경계통, 소화계통의 자율신경은 나의 의식 없이 계속 돌아갑니다. 일용할 양식을 우리 몸이 요구합니다. 우리는 끼니를 지나면 배고픔을 느껴야 건강한 표시입니다. 몇 일을 굶어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상한 것입니다.


천지창조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인생들과 피조물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29-30) 이 말씀에 보면 인간에게만 씨가 있는 채소와 나무를 일용할 양식으로 주셨고, 다른 동물, 새, 물고기에게는 푸른 풀을 식물로 주셨습니다. 그만큼 인생이 먹는 음식에 차별화 하셨습니다. 또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동산 한 가운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과실의 열매를 제외하고는 각종 나무 실과를 일용할 양식으로 주셨습니다.(창 2:16). 노아 홍수 이후에는 짐승도 잡아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단지 짐승의 피는 생명이니 먹지 못하고 피를 뺀 고기(Kosher food)를 먹을 수 있습니다 (창 9:1-6)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가기 까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대한 대책이 없었습니다. 가지고 나온 음식은 곧 떨어지고 마실 물도 당장 필요합니다. 그들은 대책이 없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여호와 이레의 은총을 받습니다. 마라의 기적을 위시해서 엘림의 기적이 일어나 물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먹을 것이 걱정거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배고프면 하나님께 간구하면 될 것인데 꼭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출 16:2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제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출 16:4-5) 과연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침이면 만나가 내리고 저녁이면 메추라기가 내리는데 40년 동안 계속 됩니다. 안식일 전날은 갑절을 내리게 하여 안식일 양식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곳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는 계속 공급되었습니다. 시내광야든 바란광야든 가데스바네아든 에돔과 모압지방, 심지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가서도 만나와 메추라기가 계속 내리다가 저들이 가나안 땅에서 첫 수확을 했을 때부터 이 만나와 메추라기가 그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쳤고 그 달 십 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수 5:10-12)


우리는 만나의 교훈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만나는 매일 내렸다는 점입니다. 만나가 매일 내렸다는 것을 통해 얻은 교훈이 밥을 먹을 때마다 “하나님! 이 음식이 광야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던 만나와 같은 것이 되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해 보십시다. 첫 번 째 만나로 차려놓은 식탁에서 그 음식이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천만분의 일이라도 의심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첫 만나의 식탁은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이런 정신으로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암송할 때마다 그 의미가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돈과 물질에 대하여 두 가지 잘못을 저지르기 쉽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주셨다기 보다 내가 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지 않고 한꺼번에 수십년 쓸것을 벌겠다는 것이요 그래서 내가 벌어서 자손만대 놀고먹을 수 있도록 이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생각으로 돈을 벌기 쉽습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비록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우리는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으며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안식일을 위해서만 곱절로 주셨다는 점에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안식일을 아는 사람을 굶기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려고 계획한 것은 반듯이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이 만나가 예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내린 만나는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또한 성막과 성전의 진설병이 바로 예수님의 예배입니다. 언약궤 안에 만나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보리떡과 물고기를 먹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자신이 생명의 양식이요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35)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먹이신 이유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였습니다. 이 점을 잘 알 때에야 바른 직업관 바른 물질과 바른 신앙관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정확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저들은 매일 만나를 먹었을 때는 만나의 고마움을 모르다가 막상 그쳤을 때 만나에 대해 감사를 합니다. 우리도 매일 마시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다가 높은 산 위에 갔을 때나 깊은 물 속에 잠기면 공기의 고마움을 실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는 가뭄으로 인하여 몇 해 째 먹을 것이 걱정이었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는데, 사실 어느 때는 농번기로 농사와 수확에 바빠야 했는데 몇 해째 농사가 되지 않고 물이 귀하여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병이어로 수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저들이 배불리 먹어 본 일은 오랜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다음 날도 주님께서 육신의 빵을 기대하며 주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 26-35)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육의 양식과 영의 양식을 함께 공급하신 것입니다.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기도하게 하심은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이 매우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굶주림의 고통을 뼈아프게 동참하셨습니다. 그들은 매일의 일용할 양식이 없었습니다. 철학의 명제 중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한 사람이 어떤 물질적 조건 아래 살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전반적인 의식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배고픈 가난한 사람들은 배 고프지 않는 부자들과는 생각하는 것과 바라는 것과 역사와 세상을 보는 눈에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입니다. 내 호주머니에 돈이 있는 때 배고픈 것 하고 내게 아무런 돈이 없으면서 배고프면 상대적으로 더욱 배고프고 춥고 서럽고 아픕니다. 저도 가난한 목회자 가정에서 한국 전쟁 후 피난민들을 상대한 교회를 부친께서 돌보실 때 사실 눈만 뜨면 무엇을 먹어야 하는 것이 걱정거리였습니다. 다른 집 굴뚝에는 구수한 저녁밥 짓는 연기가 붉게 타는 노을 저편으로 모락모락 올라가는데 우리집 부엌은 조용합니다. 조리개에 담긴 식은 보리밥과 왕소금이 저녁 상이었습니다. 그것도 감사합니다. 얼마나 보리밥은 먹었으면, 당시 이 대통령이 혼식을 권장한다고 지은 노래 “꼬끼오 먼통이 트면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옹기종이 모여 앉아 먹는 보리밥 꿀맛보다 더 맛 좋은 꽁동 보리밥 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이 노래를 싫어했습니다. 꿀맛보다 더 맛 좋기는 고사하고 모래알처럼 맛없는 보리밥이었습니다. 또 우리가 많이 먹었던 것이 시락국입니다. 개떡을 먹어야 했습니다. 하여튼 먹는 것이 큰 일이었습니다.


대학시절까지 고학을 해 가며 늘 돈이 부족하고, 먹는 문제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음식을 가리는 법이 없습니다. 맛을 찾는 것이 없습니다. 없어서 못 먹지, 무엇이든지 잘 먹는 식성이 생겼습니다. 있으면 충분히 먹어둡니다. 없을 때가 있을 테이니 일단 먹어 두지요. 고 3때 남들은 두개씩 도시락 사오고 영양 보충한다고 비타민을 먹는데 저는 당시 돈 5원을 가지고 일주일을 버텨야 했던 주간이 있었습니다.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굶는 것이 일반이고 (금식과 굶는 것은 다릅니다), 점심시간에 친구들 밥 얻어먹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그 시간 혼자 도서실에 가서 구석에 앉아 깊이 들어간 눈을 비비며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또 친구 집에 함께 공부한다는 핑계로 가면 식사제공 받고 밤참 및 간식도 먹을 수 있는데, 이상하게 호주머니에 돈이 없고 먹으러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니 더 안 가졌습니다. 서러운 생각도 많았고 예수 믿는 사람이 구차스러운 모습도 보이기 싫어했던 것입니다. 하루에 공부는 거의 17시간 해야 하고, 잠은 늘 부족한데 차비가 없어서 40분 걸어 다녀야 했고, 밤 12시경 대명동에 있는 자취방에 들어올 때 너무 배가 고파 하늘을 쳐다보면서 오는데 별들이 그리 많이 보였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공기를 밥으로, 별들을 반찬이라 생각하고 숨 한번 들여 마시고 별들을 바라보고 또 다시 그렇게 하면서 몇 번 되풀이 하는데 허기가 사라지고 포만감이 느끼면서 눈에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금식을 싫어합니다.


미국 유학시절 보스턴에서 고학하며 공부할 때 낮과 저녁에는 공부하느라 에너지 소모하고, 자정되면 새벽 7시까지 security guard 일을 하면서 잠을 자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 못하니 몸이 불어 올랐습니다. 과거 어릴 적, 또한 고등학교 어느 시절을 생각하며 참으려고 하지만, 집에 가면 아이가 우유가 모자라 우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힘들었습니다. 아내는 식당에 가서 웨이트레스 일하고, 또 베이비시터하니 우리 아이들은 안아주거나 놀아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 베이비 시터로 엎어주고 잠시 놀아주다가 공부해야 했고, 밤 11시 반에는 또 일하러 나가야 했습니다. 이런 잡일 정도로 학비, 생활비, 교통비 마련이 되지 않으니 주말이나 오후 빈틈이 생기면 정원일, 홍수를 당하여 지하실에 물이 들어와 책과 서류들이 젖은 교수댁에 가서 책 말리는 일, 야간 운전 서비스, 야채가게 짐 나르기, 운반회사, 번역일, 이사짐 센터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한 푼이라도 아껴서 아기 우유라도 충분히 먹이려고 그렇게 뛰면서 주말에는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유학생들 운전해 주기, 아파트 구해주기, 운전면허 따주기, 등 온갖 봉사는 다하고, 성경공부, 주일예배 인도 등 쉬는 날이 없는 5년간의 생활이었습니다. 당시 제 소원은 돈 걱정 없이 도서실에서 밤새동안 공부하여 세계 석학과 겨루어 보고 싶었으나 일하면서 책 읽어야 했고 심지어 운전하면서 숙제를 해야 하는 고달픈 생활이었습니다.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보내셔서 물과 빵과 고기를 공급하시며, 사렙다 과부를 통하여 기근 동안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은 것을 믿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저는 주기도문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절실한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배고픈 경험이 없으면 배부른 이야기만 하게 되지만 저 같이 가난과 고생을 체험한 분들은 이 기도가 간절해집니다. 지금도 저는 선교지에 다니면서 과거 연단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음식 가리지 않고, 잠자리 가리지 않고, 시차 적응하며 그저 숨쉬고 사는 것만도 감사하며 살기에 자족하는 생활이 선교지 다니며 자비량 선교를 하는데 얼마나 유용한지 모르겠습니다.


세계 인구의 20%이상이 오늘의 양식이 없어 굶주린 배를 부등켜 안고 잠들고 있습니다. 음식을 함부로 버리는 것은 이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뷔페집에 가더라도 자기가 꼭 먹을 만큼만 떠서 먹고는 깨끗이 접시를 비워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쓰레기에 되도록 버리는 음식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주변에 굶주리는 이들은 없는지 부지런히 살펴야 합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2년 선배가 그날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고 등교했답니다. 물론 양식이 없어서 굶은 것입니다(요즘처럼 다이어트는 사치스러운 용어이지요). 백양로에서 민경배 교수님께서 아침 인사로 ‘오늘 아침 먹었어’ 묻는데 얼떨결에 먹었다고 대답은 해 놓고 계속 강의실로 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답니다. 자기가 아침을 먹었는지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 힘을 더욱 용기를 내어 공부해서 오늘 졸업을 하게 되었다고 사은회 시간에 인사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국교회에 성미제도가 있었습니다. 밥하면서 한 줌을 성미 주머니에 넣어 일주일 모아서 교회에 가져오면 여전도회 성미부에서 교회 뒤편 게시판에 회원들이 낸 성미를 매주 표시해주었습니다. 에스겔 44장 30절 “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로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게 하라” 말씀을 실천한 것입니다. 재작년에 구미 송림교회에 가니 지금도 성미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 교회 성미로 목회 사례비를 대신 주어서 그것을 먹고 자랐습니다. 쌀보다는 보리쌀 성미가 80%여서 보리밥을 먹고 자라긴 했지만. 목회 사례비로 일부 드리고, 나머지는 배고픈 이웃에게 나누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경청하십시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읽습니다.

마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초라하고 보잘 것 없고 굶주린 소자의 모습으로 우리 옆에 계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기도하면서 교회는 일용할 양식을 나눠줄 이웃을 찾아야 합니다. 무숙자들, 고아들, 노약자들, 독거 노인들, 서류 미비자들, 중독환자들 등에게 우리의 손을 펴시기 바랍니다. 소요리 문답 104에서 주기도문의 넷째 기원 즉,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한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신 은사로서 이생의 좋은 것들 중에서도 충족한 분깃을 받고 그 모든 것과 아울러 그의 축복을 누리게 해주실 것을 구하는 것이다.(잠10:22, 30:8∼9, 딤전6:6∼8)고 답을 합니다.

잠 10:22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잠 30:8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딤전 6:6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흙”이란 시로 부제는 “전병”이라고 붙여져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전병으로/ 또 한 해를 살았습니다./ 그것이 보리떡였든/

국화무늬 곱게 빚은 절편였든/ 당신이 우리에게 내리신 만나는/

우리 식솔이 한 해를 배불리 먹고도/ 좀은 부스러기를 남긴/ 그런 축복의 전병였습니다./

부등깃보다 더 깨끗한/ 우리 가슴마다의 깃틀/ 그 말씀의 바람을 다스려/

제 절후에 씨뿌린 당신 사랑을/ 축복으로 넉넉히 거둬들인/ 이 위대한 흙을 위하여/

우리는 밤이 깊도록/ 넉넉히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주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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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주기도문 강해설교(7): “악에서 구하옵소서” (마 6:13) 윤사무엘 2009.06.10 894
41 주기도문 강해설교(6):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마 6:12) 윤사무엘 2009.06.06 1028
» 주기도문 강해설교(5):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마 6:11) 윤사무엘 2009.06.06 922
39 주기도문 강해설교(4):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마 6:10) 윤사무엘 2009.06.06 894
38 주기도문 강해설교(3): "나라이 임하옵시며" (마 6:9-13) 윤사무엘 2009.06.05 1039
37 주기도문 강해설교(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9-13) 윤사무엘 2009.06.05 898
36 주기도문 강해설교(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마 6:9-13) 윤사무엘 2009.06.04 948
35 십계명 강해설교: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출 20:17) 윤사무엘 2009.06.04 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