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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은사(2): "지식의 말씀" (호 6:1-6)

2009.07.06 13:42

윤사무엘 조회 수:1014 추천:59

 


                                         “지식의 말씀”

                                    (The word of knowledge)

                                

감람원 장로교회                                                                    윤사무엘 목사


본문말씀:  호 6:1-6, 고전 12:7-11, 벧후 1:4-7

요    절: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 11:9)

주    제:  지식의 말씀을 성령님으로부터 받아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전하자

교 독 문:  40번(이사야 58장),  예배의 부름: 시편 99:1-3,  예전색: 녹색

찬    송:  31장(개회),  87장,  199장(설교후),  98장(축도전)


오늘은 성령님의 은사 중 지식의 말씀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란 세상적 학문에 대한 지식이라기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7에 나오는 신의 성품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 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모든 교의학(조직신학)의 첫 장은 신지식(Knowledge of God = Gottes Erkentness)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바르게 되어야 우리의 믿음이 건전하며 바른 방향으로 향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때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 7:23)고 하신다면 평생 목회를 한 것이 헛고생되고, 평생 예수 믿는다고 한 것도 헛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기도, 목회, 신앙생활이 필수적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되며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시는 주님을 알게 됩니다. 호세야는 하나님과 언약을 회복하고 나서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 2:19-20)고 했습니다.


선지자들도 하나님 바로 알기 운동으로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호세아는 외치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1-6)라고 했으며, 이사야도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2-4)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셨지만 믿음이 없는 세상은 참빛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0-13)


그러나 메시야 왕국으로 하나님과 회복된 상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They shall not hurt nor destroy in all my holy mountain: for the earth shall be full of the knowledge of the LORD, as the waters cover the sea.” (사 11:9)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란 히브리어 ‘야다’(Yadah)란 말인데 믿음의 관계를 맺다, 순종하다, 하나님의 의를 세우다, 영접한다, 친분이 있다. 사랑의 관계를 맺다는 뜻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할 때도 ‘안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요 1:29-34)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 1:47-49)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1-32)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 7-10)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17-20)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요 16:15)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25-26)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12)


이처럼 요한복음에서는 ‘안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거의 믿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초대교회때 교회와 성도들을 미혹하게 했던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거 있습니다. 2세기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두드러졌던 철학적-종교적 운동인데, 영지주의는 여러 전통 종교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 이단으로 정죄하고, 한편 신약성경의 정경화, 교리 확립, 신조 작성 및·교회조직을 하게 했습니다. 영지주의라는 명칭은 그리스어 '그노스티코스'('그노시스', 즉 '비밀스런 지식'을 소유한 사람)에서 유래했습니다. 영지주의 사상에 반대한 교부들(185경 이레나이우스, 230경 히폴리투스, 375경 에피파니우스)의 글과 영지주의 저작들 자체에 소개되어 있는 영지주의 현상은 교육이나 경험적 관찰이 아닌 신적 계시에 의해 얻어지는 비밀스런 지식의 구속능력을 공통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영지주의 세계관의 기원을 이란의 종교적 이원론, 중기 플라톤 철학자들의 알레고리적 이원론, 특정 유대교 신비주의자들의 묵시적 사상에서 찾습니다. 페르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사상에서 기원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지주의적 종교혼합주의가 충분히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리스도교가 등장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최초의 영지주의자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시몬 마구스인데, 그는 악이 신성의 내적 분열에서 생겼다는 영지주의의 근본 개념을 소개한 1세기 유대교 이단자였습니다. 그러나 시몬의 '그노시스'는 목회서신에서 언급되는 영지주의 집단들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유대교와 유일신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원론적인 관점은 영지주의가 널리 보급된 이후 헬레니즘 세계에서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 확립되었으며, 플라톤 철학으로부터 하위의 신 데미우르고스(조물주)가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주장을 빌려왔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요한의 외경 Apocryphon of John〉(2세기초), 1940년대에 상(上)이집트 나지 함마디 근처에서 발견된 다른 문서들(통속적인 '영지'를 다루었음), 3세기 콥트어 영지주의 저서 〈신앙의 지혜 Pistis Sophia〉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발렌티누스, 바실리데스와 이들 학파가 제시한 지적인 '영지'론은 통속적인 '영지'를 전제로 삼았지만, 그것은 철저히 헬레니즘과 그리스도교로 채색되었으며, 때로는 중기 플라톤주의의 견해에 매우 가까웠습니다. 동방의 영지주의는 조금 다른 과정을 겪었습니다. 전통적인 이란 종교의 영향을 받은 반(半)영지주의적인 마니교는 영혼과 물질의 절대적인 우주적 이원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성격 영지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무의식적 자아는 신성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지만, 불행히도 타락했기 때문에 진정한 본질과 완전히 동떨어진 세상에 던져졌습니다. 사람은 위로부터 오는 계시를 통해서 자신의 기원·본질·초월적인 운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지주의적 계시는 이성의 힘을 가지고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철학적 계몽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교 계시와도 구분되어야 합니다. 영지주의적 계시는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으며, 성경에 의해서 전승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아의 신비에 대한 직관입니다. 영지주의자들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름이나 설명을 초월하는 심연과 침묵이고, 절대자이며, '플레로마', 즉 빛의 영역을 형성하는 선한 영들의 원천입니다. Gnosticism, philosophical and religious movement prominent in the Greco-Roman world in the 2nd century AD. While Gnosticism drew from and influenced in turn many traditional religions, its effect was most clearly felt on nascent Christianity, in which it led to the formation of the canon, creed, and episcopal organization. The designation Gnosticism, derived from the Greek gnostikos (one who has gnosis, or "secret knowledge"), is a term of modern scholarship. Evidence for the Gnostic phenomenon, found in the Church Fathers who opposed Gnostic teachings (Irenaeus, c. 185; Hippolytus, c. 230; Epiphanius, c. 375) and in the Gnostic writings themselves, reveals a diversity in theology, ethics, and ritual that defies strict classification. Yet Gnostic sects appear to have shared an emphasis on the redemptive power of esoteric knowledge, acquired not by learning or empirical observation but by divine revelation.   History. The origins of the Gnostic world view have been sought by scholars in the dualism of Iranian religion, the allegorical Idealism of the Middle Platonic philosophers, and the apocalypticism of certain Jewish mystics. There are analogies also with Egyptian and Mesopotamian thought. It was only with the rise of Christianity, however, that Gnostic syncretism came to full expression. The first Gnostic about whom something can be said with confidence is Simon Magus (q.v.), a 1st-century Jewish heterodox teacher who introduced the fundamental Gnostic conception that evil resulted from a break within the Godhead. But Simon's gnosis remained essentially Jewish and monotheistic, as did that of the Gnostic circles to which later parts of the New Testament allude. The dualistic phase was reached after the expansion of Gnosticism into the Hellenistic world and under the influence of Platonic philosophy, from which was borrowed the doctrine that a lower demiurge was responsible for the creation of this world. This teaching is to be found in the Apocryphon of John (early 2nd century) and other documents of popular gnosis discovered near Naj' Hammadi in upper Egypt in the 1940s and in the Pistis Sophia, a 3rd-century Gnostic work in Coptic belonging to the same school. The learned gnosis of Valentinus , Basilides (qq.v.), and their schools presupposes this popular gnosis, which, however, has been thoroughly Hellenized and Christianized and sometimes comes very near to the views of Middle Platonism. Eastern Gnosticism took a somewhat different course. Under the influence of traditional Iranian religion, the semi-Gnostic Manichaeism developed an absolute cosmic dualism between soul and matter. Moreover, it showed the enormous influence of Syrian asceticism, but it was equally rooted in popular Gnosticism and preserved its essential doctrines. Nature. In the Gnostic view, the unconscious self of man is consubstantial with the Godhead, but because of a tragic fall it is thrown into a world that is completely alien to its real being. Through revelation from above, man becomes conscious of his origin, essence, and transcedent destiny. Gnostic revelation is to be distinguished both from philosophical enlightenment, because it cannot be acquired by the forces of reason, and from Christian revelation, because it is not rooted in history and transmitted by Scripture. It is rather the intuition of the mystery of the self. The world, produced from evil matter and possessed by evil demons, cannot be a creation of a good God; it is mostly conceived of as an illusion, or an abortion, dominated by Yahweh, the Jewish demiurge, whose creation and history are depreciated. This world is therefore alien to God, who is for the Gnostics depth and silence, beyond any name or predicate, the absolute, the source of good spirits who together form the pleroma, or realm of light. These conceptions are expressed in various myths, which employ material from many traditional religions but serve to express a basic experience that is new, the discovery of the unconscious self or spirit in man which sleeps in him until awakened by the Saviour.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여 바른 진리운동에 동참하십시다. 성령 충만 받으면 지식의 말씀을 은사로 받게 됩니다. 성경공부를 하거나 신학을 공부하거나 모든 지적활동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찬송가 98장에 보니

1.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나 내 영혼 거듭났네

   주 내맘에 늘 계시고 나 주의 안에 있어 저 포도비유 같으니 참 좋은 나의 친구

2. 내 친구되신 예수님 날 구원하시려고 그 귀한 몸을 버리사 내 죄를 대속했네

   나 주님을 늘 믿으며 그 손을 의지하고 내 몸과 맘을 바쳐서 끝까지 충성하리

3. 내 진실하신 친구여 큰 은혜 내려 주사 날 항상 보호 하시고 내 방패 되옵소서

   그 풍성한 참 사랑을 뉘 능히 끊을소냐 날 구원하신 예수는 참 좋은 나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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