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48: 팥죽 한 그릇

2008.08.29 22:13

김성찬 조회 수:1127 추천:25

영혼일기 48: 팥죽 한 그릇

2008.08.29(금)



그녀는 에서처럼 허기졌던 걸까?

팥죽 한 그릇에 그녀는 툭 나가 떨어졌다.

그랬나 보다.

젖 한 모금에 새근거리며 다시 잠든 아이처럼.

이내 그녀는 다소곳해졌다.


난 어제가 그날인지 몰랐었다.

알았어도 별을 세는 재미로 그냥 지나쳤을 거다.

그냥 지나친 스물여섯 해.

세어보니 별이 벌써 스물여섯 개다.

난 혐의 짙은 건망증, 그 전과(前科) 이십 육범이다.


그 링 세리모니 이후

난 이벤트를 즐길 줄 몰랐다. 즐길 수 없었다.


결혼 날짜를 일러주자 한 친구가 대뜸 이런 소리를 발했다.

오, 롬팔이팔!

로마서 8장 28절이란 말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난 말씀이 탐탁지 않았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뤄?

그렇담 그 만사가 울퉁불퉁하다는 전제가 아닌가 하여.

물과 불이 만나 물불을 가리지 않는,

과정이야 그 어떻든지 결과만 선하면 된다는 말 아닌가?

난 그 말씀을 내게 적용시키고 싶지 않았다.

과정도 아름답고, 결과도 찬란해야지.

그래서 그 롬팔이팔을 내심 거부했었다.


근데, 팔자처럼, 말씀은 신의 섭리였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


그래 그 인연으로 별 하나 나하나, 별 둘 나 둘,
그 전과(前科)만 늘이는 별을 단 세월은 유수같이 흘렀다.


내 체질화된 건망증을 더 이상 인내하지 못해, 어제,

X자 붉은 표지로 touch me not 절교를 선언했던 그녀는,
허기진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에 사랑의 장자권을 나에게 넘겼다.

오늘, 해맑은 미소로.


다 포기하고, 용납하고, 승복할 테니,
그 사랑의 주도권을 당신이 쥐라고. 


그랬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그 인연을 사랑하는 자에게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0 60: What shall We do? [2] 김성찬 2008.09.10 1035
59 59: 노숙 행복 김성찬 2008.09.09 1140
58 58: 내가 무섭고 김성찬 2008.09.08 1446
57 57: 땅 끝 김성찬 2008.09.07 1294
56 56: 저 밀림에서는 김성찬 2008.09.06 1096
55 55: 문교수-그 거룩한 욕망에 대하여 [1] 김성찬 2008.09.05 1235
54 54: 투신(投身) 김성찬 2008.09.04 1026
53 53: 몸살 [2] 김성찬 2008.09.03 1053
52 52: 속울음 김성찬 2008.09.02 1139
51 51: 통섭(通涉) [5] 김성찬 2008.09.01 980
50 50: 오늘 기적으로 말 걸어오신 김성찬 2008.08.31 969
49 49: 축지법 김성찬 2008.08.30 1036
» 48: 팥죽 한 그릇 김성찬 2008.08.29 1127
47 47: 바통 터치 김성찬 2008.08.28 1504
46 46: 장경동 변증 김성찬 2008.08.27 1270
45 45: 지혜보다 나은 열정 김성찬 2008.08.25 932
44 44: 금빛 책망 김성찬 2008.08.24 816
43 43: 다시 기적으로 말 걸어오심에 대하여 김성찬 2008.08.23 1049
42 42: 토설(吐說) 김성찬 2008.08.23 1182
41 41: 망언 김성찬 2008.08.22 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