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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7: 칠십을 살아보니

2021.07.04 10:16

관리자 조회 수:15

4037 

 

칠십을 살아보니
내 청년 집사 시절 내 책상 앞에 붙여 놓았던 인생 요절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6~18)
나는 그 젊은 날, 이 말씀을 보다 타계주의적으로 받아들였었다.
헌데, 늙으막 이 아침 이 본문을 필사 묵상하다가 이 말씀이 보다 새롭게 해석 되어졌다.
살아보니, 칠십을 살아보니
타계주의자로서 서둘러 자진 타계하지 못한 미완의 타계적 삶을 비겁하게 살아보니,
겉사람과 속사람이란 물리적 인체를 구분한 것이 아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달리는 세파에 굴복하여 죽음 같은 삶을 피치 못해 살고 있는, 말로만 타계적인 존재가 겉사람이고,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날마다 새로운 구원을 맛보는, 예수 안에서 부활 생명을 누리는 지상적인 실존이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의 상태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여, 우리가 죽을 고생이라고 여기는 것조차 말씀은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환란의 경한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치부해 버린다. 그렇다. 그리스도와 진정으로 연합한 참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새로운 구원을 맛보는 부활 신앙을 생활화하며 산다. 인생 만사 그 (극히) 가벼운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자긍심)을 우리 심령에 가득 채워준다고 언명하고 있는 진리의 말씀에 참 그리스도인들은 이끌림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이 실체적 진실이 내 젊은 날 병든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듯이, 타계주의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기실 나는 아전인수식 말씀 편식을 일삼던 젊은 날,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는 말씀을 타계주의적 눈으로 뒤집어 읽었던 것이다.
맞다. 그리스도와 내적인 결합에서 생기는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란, 날마다 새로운 구원, 그 부활 신앙을 생활화는 그리스도인의 눈에, 훤히 보이는 영원함이다.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시적이라는 단어의 가식을 바로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영적 청맹과니가 바로 우리 인간 존재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으나 보이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의 안목이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다.
이 아침 성령 하나님께 간구한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18).”
하여,
금생과 내생의 조화를 이루는 경건이소서!!
-딤전4:8-
2021.07.03(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