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팥죽 한 그릇
2008.08.29 22:13
영혼일기 48: 팥죽 한 그릇
2008.08.29(금)
그녀는 에서처럼 허기졌던 걸까?
팥죽 한 그릇에 그녀는 툭 나가 떨어졌다.
그랬나 보다.
젖 한 모금에 새근거리며 다시 잠든 아이처럼.
이내 그녀는 다소곳해졌다.
난 어제가 그날인지 몰랐었다.
알았어도 별을 세는 재미로 그냥 지나쳤을 거다.
그냥 지나친 스물여섯 해.
세어보니 별이 벌써 스물여섯 개다.
난 혐의 짙은 건망증, 그 전과(前科) 이십 육범이다.
그 링 세리모니 이후
난 이벤트를 즐길 줄 몰랐다. 즐길 수 없었다.
결혼 날짜를 일러주자 한 친구가 대뜸 이런 소리를 발했다.
오, 롬팔이팔!
로마서 8장 28절이란 말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난 말씀이 탐탁지 않았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뤄?
그렇담 그 만사가 울퉁불퉁하다는 전제가 아닌가 하여.
물과 불이 만나 물불을 가리지 않는,
과정이야 그 어떻든지 결과만 선하면 된다는 말 아닌가?
난 그 말씀을 내게 적용시키고 싶지 않았다.
과정도 아름답고, 결과도 찬란해야지.
그래서 그 롬팔이팔을 내심 거부했었다.
근데, 팔자처럼, 말씀은 신의 섭리였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
그래 그 인연으로 별 하나 나하나, 별 둘 나 둘,
그 전과(前科)만 늘이는 별을 단 세월은 유수같이 흘렀다.
내 체질화된 건망증을 더 이상 인내하지 못해, 어제,
X자 붉은 표지로 touch me not 절교를 선언했던 그녀는,
허기진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에 사랑의 장자권을 나에게 넘겼다.
오늘, 해맑은 미소로.
다 포기하고, 용납하고, 승복할 테니,
그 사랑의 주도권을 당신이 쥐라고.
그랬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그 인연을 사랑하는 자에게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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