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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9: 고린도전서 이해 1

2019.06.04 10:37

관리자 조회 수:150

설교자를 위한 고린도전서 이해 1 요약 

 

강사 ; 김의창 교수(횃불 트리니티신학대학원 대학교, 서울대 영문과 졸, 영국 세인트앤드류스 대학교 신약학 박사) 

 

Ⅰ.신약은 어떤 책인가? 고린도전서가 말하고 있는 신약. 

 

1.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다.(고전2:6~10)  

 

하나님의 계시는 감추어졌던 것(2:7)이나, 우리에게 보이신 것(2:10)이다. 

계시를 감추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보여주신 분도 성령 하나님이시다.  

 

신약은, 고린도전서에서 밝힌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다. 

 

고린도전서 2:6~10절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2. 신약 성경은 새 언약이다.(고전11:25,26)          

 

새 언약이 있다는 말은, 옛 언약(구약)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새 언약이 등장했으니까 옛 언약(구약)은 헌 물건 버리듯, 필요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새 언약이 옛 언약의 갱신이기 때문에 옛 언약이 필요하다. 옛 언약을 모르고, 새 언약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1:25,26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3. 신약은 역사적 문서다.(고전16:15~17)  

 

성경은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주신 직통 계시가 아니다. 특별한 사람을 통해서 열어 보여주신 특별 계시다. 고린도전서 16장 17절에 등장한 사람들-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성경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고린도전서 16:15~17

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4. 신약은 신앙의 고백서다.(고전15:1,2)  

 

왜 극동 아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가 중동 지역에서 2천 년 전에 있었던 역사 이야기를 오늘 읽어야 하나? 성경은 그 당시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신앙인뿐만 아니라, 여기 오늘 우리의 구원을 위한 신앙고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5:1,2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Ⅱ. 서신서란? 

 

서신서는 오늘 우리를 위해 쓴 책이 아니다. 당시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다. 그런데 우리는 남에게 보낸 편지 글을 읽으며, 울며불며 은혜를 받는다. 그 이유는 뭔가?

 

왜, 우리는 서신서를 읽어야 하는가? 

 

1. 서신서는 상황문서다.  

 

보낸 사람, 받는 사람, 서신서를 쓰게 된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가 서신서를 쓰게 된 동기는 단순히 조직신학적으로 성령론, 은사론, 부활 사건에 대해 쓴 것이 아니다. 서신서의 대상이 되는 교회나 사람이 맞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 그 상황에 맞는 쓴 편지 글이다.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서 나왔고, 그 상황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서신이다. 

 

2. 과제 신학이다.  

 

그 어떤 상황이 던져 준 괴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쓴 편지 글이다. 수신자(교회)의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록한 편지 글이다.

 

3. 회람 서신이다. 

 

이는 공문서와 같은 서신이다. 당신 서신서는 공문서적인 성격을 지닌 편지 글이다. 교회와 성도들이 돌려보도록 쓴 편지 글이다. (고전 1:2; 골 4:15,16; 살전 5:27)

 

고린도전서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골로새서 4:15,16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데살로니가전서 5:27

27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서신서인 상황 문서에 담긴 글은, 과제 신학에 속한 회람 서신이다.〉  

 

Ⅲ. 고린도와 고린도교회  

 

1. 로마제국 아가야 속주의 수도. 1세기 인구가 25만 명. 

 

2. 많은 신전. 고린도화하다(corinthianize), 고린도 여자(Corinthian girl)라는 용어가 곧 매춘부를 뜻할 정도로, 향락과 쾌락과 방탕으로 대변 되는 도시였다. 

 

3. 자기 홍보(self-promotion)의 문화가 번성했던 도시였다.]

                                                                              부귀와 사치의 도시였던 고린도는 그 부귀와 사치를 제 것 삼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던 도시였다. 당연하게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기 홍보(자랑)이 만연한 도시였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는 자기 자랑이 많이 나온다. 자신의 배경을 자랑하고, 자신의 네트워크(연고)를 자랑하고, 자신이 받은 은사를 자랑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도시였다. 자기 자랑에 능한 이가 살아남는 도시였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도 자기 자랑이 넘쳐흘렀다.  

 

바울 파,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 파 등 자신의 연고를 내세우는 권력 투쟁으로 그 자랑 거리는 변질 되어갔다. 영적으로 방언, 예언 등 은사 자랑 또한 그들의 일상이었다. 고린도교회는 건물 없이, 한 개인 성도의 집에 모일 정도의 인원이 구성원이었다. 그러나 그 교회도 고린도의 자기 홍보 문화에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음을 가르쳤다. 마땅히 자랑해야 할 십자가를 자랑하고, 자랑해서는 안 될 배경, 배후, 은사 등은 자랑하지 말라고 권면했다.  

 

4. 행 18:1-19:1 바울의 두 번째 선교여행.  

 

1년 6개월을 거함(주후 50년 전후) 바울은 고린도에서 머무는 동안 자비량 선교를 했다. 텐트를 만드는 장인이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동업자였기에 만나게 되었다.  

 

5.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롬 16:3-4); 아볼로(행 18:24-19:1)  

 

브리스길라(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아볼로라는 젊은이를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해냈다. 후일에 아볼로는 고린도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로마서 16:3,4 

3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사도행전 18:26,19:1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6. 고린도교회에 바울의 4번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 중, 첫 번째와 세 번째 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 중, 두 번째 편지와 네 번째 편지만 남아 있다. 우리는 그 남아 있는 편지를 각각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로 부른다. 그러나 그 두 편지는 연달아 쓴 편지가 아니므로, 내용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 첫 번째와 세 번째 편지가 고린도전서 전후로 있었음을 인지하고, 전∙후서를 읽어야 한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사역한 후에 에베소로 건너가서 첫 번째 편지(고전5:9)를 썼다. 그 후 그 첫 번째 편지에 대한 고린도교회의 답신을 바탕으로 두 번째 편지, 고린도전서를썼다. 고린도전서는 고린도교회에 대한 소문(고전1:~6:)에 대한 답변과 고린도교인의 질문(고전7:~16:)에 답한 내용이 담겨있다. 

 

고린도전서 5:9 

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첫 번째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그 후, 바울은 두 번째 고린도교회를 방문한다. 그런데 그 방문은 매우 고통스러운 방문이었다. 왜냐하면 두 번째 편지, 고린도전서 5장 9절에 음행하는 자들,이라고 적시한 바울의 편지 글이 자신들을 지칭한 것이라고 여긴 교인들이 바울을 심하게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에 크게 상심한 바울이 다시 에베소로 돌아 와 (소실 된)세 번째 편지인 ‘눈물의 편지’를 썼다. 자신을 대적한 이들을 방관한 고린도교인들에게 그 슬픔을 호소했다. 그 후 바울은 에베소에서 극단의 외적 위해와 심한 우울증(고후1:8 이하)을 앓고, 살 소망까지 끊어진 상태로 뱃길로 돌아오는 디도를 빨리 만나려고 드로아로 갔다. 그러나 디도를 만나지 못했고, 이후 마게도냐로 가서 디도를 만났다.(고후2:12이하). 디도는 ‘눈물의 편지’를 받아 본 고린도교인들이 바울의 대적자들을 출교 시킨 소식(고후2:6이하)을 바울에게 전한다.  

 

그 후 바울은 빌립보에서 ‘눈물의 편지’에 대한 바른 대처를 한 고린도교회에 네 번째 편지인 고린도후서를 AD55년 경에 썼다. 그러면서 출교당한 대적자들에 대한 관용(고후2:7,8)을 베풀라고 권면한다. 

     

고린도후서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고린도후서 2:12,13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고린도후서 2:6,~8

6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첫 번째 고린도 방문 & 교회 설립 ⤍ 첫 번째 편지(고전 5:9) ⤍ 두 번째 편지(고린도전서) ⤍ 두 번째 고린도 방문 ⤍ 세 번째 편지(눈물의 편지) ⤍ 네 번째 편지(고린도후서) 

 

 Ⅳ. 고린도전서 개요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대한 소문과 고린도교회가 보낸 질문에 대해 답한 서신이다.  그러나 소문과 질문에 답하는 사도 바울의 태도가 전혀 다르다. 소문에 대한 바울의 답글은 매우 엄격하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글은 매우 유연하다.

 

1. 소문(1:-6:)-바울의 태도 ‘엄격’  

교회 내의 분쟁(1-4) // 교회 내의 음행(5-6) 

 

2. 질문(7:-16:)-바울의 태도 ‘유연’   

결혼(7)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 우상에게 바친 제물(8-10) // 공예배: 머리를 가리는 문제, 성만찬(11) // 성령의 은사(12-14) 은사의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다양하고, 교회에 유익한  // 부활(15) // 연보(16) 

 

Ⅴ. 인사말(1:1-3)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1:1),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발신인 1:1 바울과 소스데네 / 수신인 1:2 고린도교회 / 인사말 1:3 

 

2. 부르심을 받은 자(1, 2절) 참조. 1:9, 24, 26 = 유효한 소명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굳이 사도,라 밝히는 이유 

1) 사도직에 대한 시비에 그리스도 안에서 사도임을 재천명고자 

2) 보내심을 받았다고 강조함으로 그 사도직이 그리스도 예수의 메신저임을 강조함으로, 자신이 아닌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수신자들이 집중하게 하려고  

 

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ἡγιασμένοις), 거룩한 자들로(ἁγίοις) 부르심을 받은 자.  

 

‘이미, 벌써(Already)와 아직 아닌(Not yet) 긴장 관계’  

우리는 (이미, 벌써) 거룩하여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아직 아닌) 거룩한 자들로 부르심을 받은, 날마다 거룩해지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4. 또 모든 곳에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과 함께  

모든 곳에서-어떤 장소, 어떤 시대에서도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우리.

모든 자-오늘의 우리가 이 서신을 읽을 자격이 있음에 대한 성경적 근거 마련 

 

5. 은혜와 평강(카리스 [후민 카이] 에이레이네이 χάρις ὑμῖν καὶ εἰρήνη). 참조. 보통의 인사말은 χαίρειν(카이레인) 행15:23; 23:26; 약 1:1.  

 

은혜와 평강은 1세기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선 용어였다. 이는 바울이 만들어 낸 인사말이었다.  

 

1) 어떤 은혜인가? 4-8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2) 어떤 평화인가? 9절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다.” 

 

Ⅵ. 첫 번째 소문: 교회 내의 분쟁(1-4장)  

 

1. 문제의 상황(1:10-12):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권력 투쟁이다.  

이천 년 교회사의 분쟁의 원인이 거반 권력 투쟁이다. 신학적 논쟁조차, 신학/교리 논쟁을 가장한 권력 투쟁이었다.  

 

2.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나는 바울의 것이다…). 

 

바울 파=고린도교회 설립자의 권위를 내세운 패밀리(Family)

아볼로 파=현직 젊고 유능한 고린도교회의 수장의권위 내세운 패밀리(Family)  

게바 파=수제자인 베드로의 권위를 내세운 패밀리(Family) 

그리스도 파=그리스도의 직속이라는 권위를 내세운 패밀리(Family)

  

3.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3:3-4) 

 

고린도전서 1장부터 4장 까지는 분열과 분쟁의 이야기가 나온다. 고린도전서 1장 10~12절과 3장3,4절이 그렇다. 

  

4. 복음(1:17)⤍십자가의 도(1:18) 

 

1장과 3장 사이, 1:17~2:16에서 바울은 십자가의 도를 말한다. 

 

특히 1장 14,15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에서 세례를 베푼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하면서, 권력투쟁을 하는 것은 십자가의 도와 상관이 없음을 말한다. 고린도교회의 분쟁은 자기 홍보의 문화에서 비롯된 자기 자랑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바울을 당시 치욕과 능멸의 대상이었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음을 고백한다.  

 

5. 두 개의 카테고리(1:18-2:16)  

 

1) 미련한 것 & _하나님의 능력_ (18)  

2) _멸망하는 자들_ & 구원을 받는 우리(18) 

3) _이 세상의 지혜_ (20) & 하나님의 지혜(21)  

4) 세상의 자기 지혜(21) & _전도의 미련한 것_ (21)   

 

전도의 미련한 것은, 전도 방식이 아니라 전도의 내용이었다.

십자가에 맥없이 달려 죽었다는 무능한 당신의 신을 믿으라고?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전능 신을 숭상하려드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5) 유대인의 표적과 헬라인의 지혜(22) & _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_ (23)  

 

표적은 기적이 아니다.  

표적은 당신이 그리스도(메시아)임을 보여주라고 할 때 사용한 언어다.  

유대인들을 집요하게, 예수께 당신이 역속의 성취로 하늘로부터 내려 온 메시아임(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예수께서는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게 없다고 하셨다.

 

6) _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_ (23) & 하나님의 능력, 지혜(24)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는 어디에 나타났는가?  

못 박힌 십자가의 예수에게서 나타났다. 그러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서도, 세상의 지혜와 세속적인 권능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영(인간의 지혜)을 믿고, 좇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라는 카테고리(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7) 사람의 지혜 & _하나님의 어리석음_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