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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7: 암병동에서

2020.07.18 08:03

관리자 조회 수:10

암癌병동에서

 

무서운 병에 걸렸다고 했다.

아니, 무서운 게 아니다. 깊다. 깊은 병이다.

그녀의 병이 치유하기 어려운 병인 이유는, 깊기 때문이다.

그 굴곡진 삶의 깊음에 치유 난망의 이유가 숨어 있다.

 

시인 장석주는 그의 시 <대추 한알>에서, 

대추 한알의 농익음에 대해 이렇게 읊조렸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대추 한알이 농익는 세월의 깊음에 대한 일갈이다.

 

아무 일 없이 덤벼드는 병이란 없다.

아무 일 없을 수 없었던, 고난의 행군이 피할 길 없던 그녀의 일생의 일이었다.

쓸개가 다 녹아내린 그녀의 깊은 상처를 감히 위무하노라,

그녀에게 평강을 빌어주다가, 문득 이 말씀이 뇌리에 스쳤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6:14) 예레미야는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고발하고 있다.

 

그녀의 상처를 가볍게 여겼기에,

나는

쉽게, 너무도 쉽게 평강 운운했음에 틀림 없다.

 

차라리, '시무언'(是無言)-말 없음이 옳았다.

 

아무 말이나 내뱉어야 한다는 직업 의식이, 외려 그 상처를 덧나게 하곤 한다.

 

뿌리까지 닿는 그 은혜만을 묵도默禱*로 빌어줬어야 했는데,

 

공허하다.

 

2020.07.02(목)

 

* 묵도 [默禱]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기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