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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살기

2007.11.09 18:07

김성찬 조회 수:1033 추천:120

이 세상에서 살기                          (지난 세기에 쓴 글이지만 오늘도 여전히 유효한 내용이라서 올립니다.                           이런 글 자주 대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이 홈피에 모아놓을 생각입니다.                           그래도, 이 글들이 오늘 우리에게 뭔가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 인간사가 동어반복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세상 밖으로 우리는 최근 몇달동안 「세상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분하고,슬픈 이야기를 들어 왔습니다. 숨돌릴 겨를도 없이 말입니다. 그중 대표적인 성수 대교 붕괴 참사는 참으로 가슴 아픈 별리(別離)였습니다. 손 한번 흔들어 보지 못한 채, 그야말로 「뿅, 세상 밖으로」의 축출은, 그 희생자들의 자기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슬픈 이야기를 다시 일일이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누가, 무엇이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내몰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은 필요하다고 생각해 봅니다. 누구입니까? 여기서,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내몬 이들은 바로 「이 세상에서 살기」에 실패한 이들이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살기」에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언젠가, 신학교 편입 시험을 치르던 날, 면접 시험 중에 모교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물어 왔습니다. “왜, 선생 노릇 관두고 신학교엘 왔나요?” “-------.” 나는 그때, 그때까지 겨우 6년여 동안만을 세상에서 살아 왔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나에게 있어서의 그 기간은, 하루가 천년 같은 6년이었던 것입니다. 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살 수가 없었습니다. 자꾸만 시간이 더해 갈수록 깃털이 다른 새들 틈에서 산다는 것이 지옥같이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때, 밤마다 나의 고뇌와 아픔을 각인해 대던 ‘백지(白紙)의 인내’가 없었더라면, 칠흑같이 어둔 밤 더듬거리며 찾곤 하던, 멀고 외딴 예배당의 안식이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영원히 「세상 밖으로」 내몰렸을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이 세상에서 살기」는 결코 쉽지가 않았습니다. 뒤늦은 신학교로의 선회(旋回)는, 나의 타계주의(他界主義)의 당연한 귀결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 몸에 절은 이 타계주의가 생래적(生來的)인 것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후천적으로 습득되어진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육에서 난 것은 육일 뿐!” 이런 나의 신앙고백은, 나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는, 세상 밖으로의 탈출을 은밀히 계획하게 했으며, 난 드디어 그 일을 감행케 된 것입니다. 그러고도 오랫동안 나는,  그러한 나의 「세상 밖으로」가 정말 독실한 신앙 고백적 결단이라고 스스로 자부해 왔었던 것입니다. 내 자리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나라가 무너졌다는 성수 대교 붕괴 사건을 접하면서, 번뜩 스친 한 영감(靈感)은, 그 동안 나의 자기 도취적 영적 자만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 때문에 말입니다. “그렇다 저 다리의 붕괴는 내가 「세상 밖으로」 도피해 버림으로써, 그만큼 허술해져 버린 이 세상 속의 ‘내 자리’의 붕괴다”라는 직관이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책임 회피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나의 편벽된 가치관, 신앙관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나는 그 동안, 어떤 직업이 더 가치 있는 직업인가라는 속물적 화두에 몰입해 있었고, 「죄로 가득찬 사회 질서」에서의 도피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 생각했던 「절반의 진리」에 선 사람이 ‘바로 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붕괴의 원인은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살기에 실패한 바로 ‘나’에게도 있었습니다.  󰡔속물적 직업관과, 편벽된 신앙고백󰡕 나는 그 동안 이런 세뇌 교육에 익숙한 모범생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나친 비약인지 몰라도 나는, 오늘 이 시대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왜냐하면 내속에 있는 이런 기형적 유전 인자가 내 핏톨속에만 흐르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25%, 그 다리를 설계하고, 시공하고, 감리하고, 관리하던 이들중 4분의 1의 사람. 소위 예수쟁이들, 그들도 「이 세상에서 예수 정신으로 살기」에 ‘실패’한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빛과 소금으로 살았다면 그 다리는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닷물 속의 염분은 겨우 2.5%로도 그 바다의 생명력을 유지한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절반의 진리, 절반의 실패 이번 사건으로 청와대가 (김영삼정부시절)기이한 유언비어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잇단慘事 경내佛像 철거 때문,청와대 악성 유언비어에 곤혹」-이런 이야기 말입니다. 기독교 장로인 대통령이 불상을 철거했기 때문에 대형 참사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증폭되더니 급기야 외신을 타고 침소봉대(針小棒大)된 유언비어가 활자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언어도단(言語道斷)입니다. 그러나 그 신문 기사의 행간에 숨긴 깊은 경고를 영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저 단순한 해프닝으로만 여길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수 대교의 붕괴로 표출된 이 ‘기적(奇蹟)의 허구(虛構)’는, 의인이 열 사람이 없어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단지, 「교회 생활만 잘하는」 한국 교회 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다 잘 믿는 것 같은데, 교회 안에서는 교인인 것 같은데,  「이 세상에서 예수 정신으로 살기」는 실패하고 있는 의인은 절반의 의인일 뿐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이 ‘절반의 의인’이란 말의 의미는, 「이 죄로 가득찬 사회 질서」로 부터, 요나처럼 도피한 자거나, 베드로처럼 방관만 한자거나, 가룟 유다처럼 그 집합적 악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자로 세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월터 라우쉔부쉬(Walter Rauschenbush)는 그의 저서 「사회 복음을 위한 신학」(Theology for the Social Gospel)에서, 믿는 자들이 온전한 신앙을 갖도록 하기 위해, 「사회 복음」을 강조합니다. 그가 말하는 「사회 복음」이란 개인주의적인 복음이 외면하고 있는, 「죄로 가득찬 사회 질서」, 그 집합적 죄(collective sin)를 회개하도록 촉구하는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그것은 민족의 구원을 믿고 바라던, 옛선지자들의 신앙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개인의 구원 없이는 사회의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은 ‘절반의 진리’라고 지적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집단이 행한 악행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온전한 진리를 위해 사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사회 복음의 신학은 죄란, 본질적으로 이기심이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께만 범하는 죄는 희귀하다는 것입니다. 죄란 죄인과 하나님 사이의 사사로운 거래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직장의 동료를 사랑하고 봉사할 때,하나님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것이 되듯, 반대로 우리가 다리 하나를 건설하는데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반역하는 죄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자들은 바른 설계도대로, 정직하게 물자를 투입해서, 적법하게 감리하고, 성실하게 관리하는 일을 방해하는 모든 자들과 싸워야 하며, 만일 적당히 타협하거나 방조하거나, 더럽다고 도피해 버리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행여, 그 동안 우리 모두는 「죄로 가득한 사회 질서」, 그 집합적인 죄에 너무 무감각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니 오히려 동조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살기」는 잘하는데, 「이 세상에서 살기」에는 실패한 것입니다. 아직도 이 땅의 천만(千萬) 그리스도인 가운데, 이 사회악에 대해서 책임적 주체 의식을 가지고 투쟁하는 의인이, 채 열 명도 못된다는 말입니다. 어디 소돔과 고모라가 헐벗고 굶주려서 멸망했습니까? 교회가 가난해서 힘이 없던가요? 어쩌면 우리 교회의 부유함도 ‘기적(奇蹟)의 허구(虛構)’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우쉔부쉬에게 있어서의 구원이란 하나의 변화인 것입니다. 이기심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죄로 가득한 사회 질서의 변화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믿음으로 행하는 자의 최대 과업이며, 하나님의 최고의 은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허용(許容)된 위선(僞善) 그렇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 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사회악의 제거란, 한 개인인 우리의 신앙고백 만으론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이런, 자유주의적 환상, 정치적 낙관론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며,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으나, 사회는 결코 그와 같은 개인적 차원의 도덕적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한 사회 집단은 매우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한 국가나 계급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부도덕도 감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집단의 악을 견제하는 데는, 양심에 대한 호소나 설득 같은 것은 아무 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양심과 국가적 요구는 그 초점이 다르므로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내면 생활의 요구에, 하나는 사회 생활의 필요에 초점이 있어서 쉽게 조화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도덕적 개인은 불가피하게 위선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기독교 2천년사에 그 누구도 해결치 못한 예수에 의해 계시된 윤리적 표준과 현실 사회에서 경험되는 죄와 흑암의 권세 사이에서 겪어야 하는 갈등과 대립의 문제. 그래서, 인간 사회에서의 정의 구현을 위해 정치가 있어야 한다며, 정치 세력을 통한 정의를 강조한 니버(Reinhold Niebuhr)의 크리스찬 리얼리즘(현실주의). 그 한 모델이 될 만한, 그 오랜 군사 독재 끝에 이 땅에 이룬 문민 정부. 더구나 기독교 장로 대통령을 내세워 ‘개혁의 정의’를 부르짖고 있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던가요. 그런데 하물며 힘없고, 정치력 없는 일개 민초(民草)들이 어떻게 거대한 공룡 같은 「죄로 가득한 사회 질서」를 올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살기」를 포기했던 것도, 바로 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괴리, 그 어찌할 수 없는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만일 나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살이 다 걷어치우고 기도원으로나 들어가 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의 평신도로서의 삶은 실패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건실한 신앙인으로 이 험한 사회를 힘써 살아 나가는 평신도들을 볼 때마다, 깊은 존경의 염(念)을 마음으로 표하곤 합니다. 그리고 간단히 매도하긴 쉽지만, 그들이 어쩔 수없이 방조할 수밖에 없거나 가담할 수밖에 없는 비신앙적인 일에 대한 신앙적 고뇌를 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이 세상에서 살기」를 거부하고 목회자가 되었다고, 그런 본질적인 갈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문제가 오히려 더 심각해진 것입니다. 차라리 그냥 그대로나 살았으면, 이 ‘허용(許容)된 위선(僞善)’을 부리는 죄악은 범하지 않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정말 산다는 것은, 더군다나 성도로서 이 땅에 산다는 것은, 이렇게 어렵고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멸망의 도성엔 열명의 의인이 없었고,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고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힘이 들고 어려워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정신으로 살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마10:16a)”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니버도, 옹벽 같은 인간의 깊은 죄성과 철벽같은 집단적 에고티시즘으로 치장된, 돌파하기 힘든 현실의 두터운 벽이 우리 앞에 있음을 직시하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도피하거나, 방관만 하거나, 세속에 물들어라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결코 은둔자 에세네파 사람들의 역사도피적인 삶의 자리, 광야(廣野)에 머무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사셨던, 하나님 나라는 민중들이 고통 받는 삶의 현장 갈릴리 나사렛 그 한복판이셨던 것 입니다. 그리고 그 고뇌의 현장에서 살아가야 할 그의 백성들에게, 힘들고, 험한 세상에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게 살라(마10:16b)”고 말씀하십니다. 니버도, 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괴리, 그 어찌할 수 없는 한계는 “개인 도덕과 사회 도덕이 대립되면서도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할 수 있다”고 말하며, “정의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할(고전10:31) 고귀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선진 자본주의의 초석이된 청교도 윤리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의 ‘직업관’이 그러했습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에서 오늘 서구 선진 자본주의는 인간의 직업(beruf 또는 calling)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이고, 노동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 청교도 윤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직업은 신앙인의 도덕 훈련의 수단이며, 노동을 한다는 것은, 어떤 공리주의적 동기보다 노동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직업을 소명(召命)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윤리에 기초한 청교도들의 근검(근면과 검소), 염직(청렴과 정직)이 재물을 쌓는 것으로 변모하면서 자본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죄로 가득한 사회 질서를 ‘어떻게 하여야 올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 거기엔 모범 답안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리가 아니라 윤리며, 탄력성 있는 삶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볼트하나,나사하나 조이는데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근검과 염직으로 산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 정신으로 사는」, 그 첫걸음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허드렛 일을 할 때도 그 면접 시험관, 교수님께서 추궁하듯 재차 답변을 요구해 왔을 때, 난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보다 가치 있는 일에 헌신하고파서---”라고. 그러자, 이런 중얼거림이 내 귀에 들려 왔습니다. “교직은 뭐, 가치가 없나요?” “------.” 오늘, 래리 피바디(Larry Peabody)는 오늘 이 시대의 신앙인들은 전임 사역(목회)만이 보다 가치 있고, 소중한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잘못된 신앙을 갖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그는 “당신의 직장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사역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생활을 ‘신성한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으로 지나치게 구분하며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일관되고 통합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는 말씀에 굳게 서야 할 것입니다. 여기 평신도로서의 ‘이 세상에서 살기’에 실패한 내가, 너무 긴 ‘세상 사는 이야기’를 감히 우리의 훌륭한 평신도 분들 앞에서 떠들지 않았나 쉽습니다. “너 나 잘해” 이렇게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도 또 다른 ‘가치 비교’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가 나에게 가책을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이 이야기, “나는 로렌스 형제가 몇 백년 전에 발견했던 진리가 생각난다. 그는 수도원의 기도실에서 묵상할 때와 똑같이 수도원의 부엌에서 허드렛일들을 할 때에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누릴 수 있었다”(아더 왈리스(Arthur Wall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