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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7: 어머님의 기일 찐빵

2019.07.28 09:36

관리자 조회 수:21

오늘이 어머님의 기일(忌日)이다. 

지난 2000년 7월 23일(주일) 18시 50분에  

당신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 해 당신 연세 79세이시던 해,  

힘든 병환 앞에서, "내가 목마르다“하셨지. 

그 낯설었던, 어머니를 다시 회상해 본다,  

만날, 육신에 져서 육적으로 살아가면서.  

      

☆☆☆☆☆☆☆☆☆☆ 

 

2000년 5월 10일 (수) 

 

병문안 오신 친지 분 가운데 한 분이,   

모처럼 먼 데 있던 자녀들과도 함께 지내고 계시고, 보고픈 친지들도 이렇게 드나들고 하니, 기분이 좋지 않으시냐며, 어머님께 이렇게 물었다.  

 

“전도사님, 기분이 좋으면 몸이 좀 가벼워지시죠?”  

 

“•••••• 아니, 그렇지 않아, 몸이 좋아야 기분이 좋아.”

   

정말, 뜻밖이었다. 나는 어머니께서 당연히, 그래요, 기분이 좋으니 몸도 한결 가벼워진 것 같네요, 라고 답하시리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내가 평생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고, 해서 전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생경한 대답이 어머니, 우리 어머니(그 어떤 어머니이신가?)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반신반의했다. 육체의 건강이 정신의 건강이라니. 어머니의 그 강인한 정신력. 아니 태산이라도 평지 되게 하실 영력. 그런데, 바로 그런 분이 몸이 좋아야 기분이 좋다고 하시다니. 그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며, 꿋꿋이 영에 속한 삶을 당당하게 살아오신 당신이 아니셨던가? 순간, 나는 내가 굳게 신봉해 왔던, 어머님에 대한 나의 강철 같은 내 안의 영적 신뢰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구나,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라지만, 육신도 영만큼 정신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구나. 그래,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상에서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다지. 그랬어도, 나는 내 눈앞에 현존해 계신 나의 우상, 우리 어머니만은, 그 어떠한 형편에서도 목이 마르지 않을, 않아야 하실 분이라고, 나는 평생 굳게 믿어왔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육이 편해야 영혼이 평안하다고? 우리 어머니께서? 사카레이의 표현대로, 모든 자녀들의 신(神)이신 어머니에 대한 나의 유일 신앙(?), 그 살아 눈에 뵈는 영체에 대한, 내 원리주의적 가치관에 큰 혼란이 일었다.  

 

문득 내 청소년기의 기억 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내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그 어느 한 날 밤, 손님 한 분이 우리 집엘 다녀가셨다. 그 다소곳한 여인네는 이내 떠났고, 그 빈자리에는 봉지 하나가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얼른 펼쳐 봤더니 찐빵이었다. 맛난 앙꼬가 듬뿍 박힌 따끈한 찐빵. 근 십여 개 가량 됐었을 거다. 

 

한 입, 두 입, 나는 어머니가 그 손님 배웅하러 잠시 나가신 사이에, 야금야금 혼자서 그 찐빵을 다 먹어 치워 버렸다. 

 

이내 다시 방에 들어서시던 어머니께서는 그 빵이 하나도 남겨져 있지 않음을 목도하시곤, 이렇게 한마디만 던지셨었다. 

  

“벌써 다 먹어 버렸냐…….”   

 

내가 왜 그랬었을까? 철들만한 나이였는데도. 그것은 아마도 내 무의식 속의 어머니는 모든 것이 늘 괜찮고, 뭘 안 드셔도 아무렇지도 않으신 신선 같은 분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떡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신 광야의 예수처럼. 우리 엄마는 말씀만으로, 예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천상의 사람으로만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야 다소 이해할 것 같다. 왜 우리 어머니께서 그토록 간절하게도 그 칙칙한 예배당에서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 주시네,' 라는 찬송을 밤새 애절하게 목 놓아 부르시곤 하셨던가를.  

 

그리고 이 순간 어머니는 이렇게 나에게 말씀하고 계신 듯하다.  

 

"성찬아, 나도 그 찐빵을 먹고 싶었어, 먹을 수 있었어."라고.  

 

그래, 당신도 육신을 지니신 분이셨구나. 당신도 찐빵을 드실 수 있는, 드실 줄 아는 분이셨구나. 그런데도 나는 일평생 어머니를 육신이 없는 분으로 대해 왔구나. 목 말라서도, 배가 고파서도 안 되는......,

 

어머니, 

이 아이는 자랐으나, 여태껏 자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이제라도 내 앞에서 마음껏 아파하십시오,  

어머니,

이제라도 맛난 것 먼저 챙겨 드십시오,  

 

이젠 너무, 너무도 늦어 버렸지만 말입니다.  

 

어머니,  

 

☆☆☆☆☆☆☆☆☆☆

 

2019.07.23.(화) 2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