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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예언을 이루는 예의에 대하여

 

아리마대 요셉은 유대 최고 법원인 산헤드린 공의회 원로였다. 그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로마 총독 빌라도를 교리적으로 압박한 유대 압제자 그룹에 속한 권력자요, 부자였다. 그런 고위 신분과 위치에 있던 그가 메시아 예언을 이룬 예의를 동시에 갖춘 압제자/부자였다고 복음서의 저자 마태는 기록하고 있다.

 

어떤 예언인가?

 

구약 이사야서 53장 고난의 종,에 대한 예언이다.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 오실 메시아의 생애와 사역 그리고 고난과 죽음에 대한 예언이다. 

 

○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악한 사람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사53:9)

 

이 메시아닉 예언을 이룬 예의, 한 인간의 죽음 그 존엄에 대한 예의를 갖춘 압제자/부자가 신약 복음서에 등장한다.

 

○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마57~60)

 

빌라도에 의해 사형 언도를 받아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나사렛 예수에게 예수를 죽음으로 내몬 유대인 압제자 그룹 산헤드린 공의회 원로요, 부자가 그 국사범의 시신을 거둘 무덤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성서 기자 마태에 의해 소개된 아리마대 요셉이 바로 그다. 

 

그 예언을 이룬 예의 

 

마태는 믿어지지 않게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제자였다고 말하고 있으나, 설혹 그가 예수의 제자였다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무덤을 대역죄인인 예수에게 무덤을 내어 준 행위가 메시아의 예언을 이루려는 그의 믿음의 행위는 아니었음에 틀림 없다. 왜냐하면 예수의 찐 제자들조차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예언하신 예수의 말씀을 기억조차 못할 공권력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마대 요셉의 행위는 예언을 이룬 믿음의 열매가 아니라, 인간 예수의 주검에 대한 인간적 예의의 열매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9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고 남을 멸시하는 몇몇 사람에게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눅18:8,9)

 

그렇다. 예언을 이룰 믿음은 말세지말을 사는 우리에게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예언을 이룰 예의 정도는 표할 수 있어야 한다.

아리마대 요셉처럼.

 

오늘 우리 교회 안에 없는 <믿음>

오늘 다시 교회 안에 둥지를 튼 세속 자본과 권력욕에 의해 부정 당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온전한 믿음이 우리에게 없을지라도, 현대판 산헤드린에 의해 죽임 당하신 예수의 시신을 누일 내 마음의 공간 정도는 내드릴 인간적 예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불한당에 의해 테러를 당하고, 종교/인종/연고주의에 차별을 받고 있는,

길 가다가 강도 만난 이웃에게,

믿음 이전, 인간적 예의를 표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줄 수는 없을까?

 

믿음은커녕, 

스스로 의롭다 확신하며 타인을 인간 이하로 대하는 멸시에 찌든,

비인간적인 말세지말의 표상인 우리에게

인간 예수는 묻고 있다.

 

아니, 예수의 복음이 말하고 있는 믿음이란,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예수께 하는 것이라는 믿음이요, 

믿음의 행위란, 바로 그 고통에 감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믿음과 행위가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살아 있는 예수의 로기온(logion)이다.

타인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가 최후 심판의 표준과 근거라는 말이다. 

 

그 예언에 대한 인간적 예의가 말이다.

 

아리마대 요셉은 그 주검에 대한 인간적 예의로, 예수의 제자라 여김을 받았을 거다.

이 미담은, 믿음은커녕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일말의 예의도 없는, 교리에 찌든 한국교회에 던지는 성령의 돌팔매다. 라는 생각이 든다.

 

2020.07.17(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