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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기 터키 성지순례기(1)-암스테르담에서 이스탄불

2008.04.10 01:03

윤사무엘 조회 수:2236 추천:62

지난 주일 감격의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월요일 터키로 향했습니다.(2008년 3월 24일)

 

이번 성지순례는 (1) 바울의 1, 2, 3차 선교여행지 (2) 소아시아 일곱교회 (3) 밧모섬의 요한 계시동굴교회 (4) 갑바도기아와 메테오라 수도원 방문이었습니다. 프린스톤 정거장까지 아내가 라이드를 해주었는데, 오늘 아내의 생일인데 나는 또 여행을 떠나게 되어 지난 주말 아이들과 미리 축하를 하긴 했지만 미안했습니다.

 

Newark 공항으로 가서 Northwest (KLM)을 타고 6시간 반 동안 네덜란드로 향했습니다. 항공시간은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찬송가를 2시간 부르고(물론 옆 사람 방해되지 않게), 잊어버렸던 가사를 회복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터키와 그리스로 향했습니다. 그래서 비행시간이 제게는 부흥회 시간이었답니다

 

1. 첫째날(2008년 3월 25일), 암스테르담에서 이스탄불, (눈, 흐림, 비) 네덜란드 섭씨 영하 1도, 터어키 영상 2도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우리 일행을 모두 만나게 되었습니다 휴스톤, 오클라호마시티, 로턴, 플로리다, 시카고, 코프스 크리스티, 달라스, 뉴저지에서 오신 목회자들과 성도님들이 3시간 반 비행으로 터키의 이스탄불에 도착했습니다. 7개의 짐이 도착하지 않아 신고하는데 1시간을 지체했고, 가이드 되시는 최평화장로님(태극 성지여행사 사장님)과 인사를 하며, 또 다른 버스의 가이드이신 손정자 전도사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영국과 아프리카에서 오신 선교사님과 합류하여 모두 66명이 대형버스 두대에 나눠 타고 (소망팀, 사랑팀) 성지순례 및 선교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스탄불(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은 360년부터 1453년까지 비잔틴 제국의 수도이자, 동로마의 수도로서 찬란한 시절을 누리다가 오스만 터키 제국시에 이슬람국가로 바뀌었습니다 공화정 전까지 120명의 황제가 다스린 곳으로 실로 세계적인 도시입니다. 인구의 99.5%가 무슬림(=이슬람교도)입니다. 수도는 앙카라(Ankara)이며, 이스탄불에는 1300만 인구가 삽니다. 인구별로 대도시는 Istanbul, Ankara, Izmir, Adana 순서입니다. 1923년 5월 19일 국부(Ataturk)라 불리는 카밀장군이 오늘날 터어키 공화국으로 세운 후 이제 대통령제, 의회가 있는 나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6.25 참전국, 고마운 나라, 위스키달 노래를 지금도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 Anatolia(=소아시아 Asia Minor; Greek ‘anatole’=‘east’)이며 Asia(Asya) is from ‘assuwa’ in the Hittite text. 헷족속(Hittites) 거주(창 10:15-18, 23:1-20, 26:34-35, 겔 16;3)-Hittite Law Code(1200년경) 주후 360년부터 1453년까지 비잔틴시대 수도(1100년간), 그 후 오스만 터키(Osman=Ottoman 영어식 표기)제국의 터키 지배(1453-1923) 술탄(Sultan)은 황제의 칭호임.

Sultan 1, Ahmedin Tahti(1603-1617); Sultan II Mahmuda(1730-54); Sultan III(1757-1774 1923년 국부 케말타사가 건국(2008년 85주년을 맞이함) - 케말 파샤(장군) Mustafa Kemal Atatürk (1881-1938, 11월 10일)은 Thessaloniki에서 출생, 3세 때 Kemal이라 명명됨, 38세인 1919년 5월 19일에 Samsun에서 독립전쟁을 준비하기 시작. 그는 대통령 5년 단임만 하고 후임 Izmir에게 자리를 이양함. 평민으로 돌아감. 53세까지 독신으로 지내면서 ‘나는 터키와 결혼했다’고 함.Mustafa Kemal was given the surname Atatürk(=국부 國父). (Istanbul airport 그의 이름을 따라 공항이름 지어짐) In 1938(11/10), he died of cyrrhosis of the liver in Istanbul. 술을 좋아해서 간경화로 사(57세). 현재도 터키인들을 그를 존경허고 있다.

 

면적 78만 평방킬로미터(한반도 3.5배, 남한의 8배 정도) 7500만 인구에 한인 인구는 약 1000명으로 추산되며 이중에 태반이 선교사님들입니다.

한인교회가 이스탄불에 한 개 있습니다, 이스탄불은 1300만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곳, 실크로드의 끝이 있는 곳, 이스탄불은 소피아 교회(537년에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명에 의해 10년간 건축)가 대표적입니다.

 

비가 내리는 첫날 오후에 바삐 움직여 소피아 교회를 탐방하고, 바로 맞은편에 있는 Blue Mosque (6개의 첨탐이 있음), 또한 히포드럼(두개의 오베리스크)를 살핀 후 호텔에 투숙하여 도착예배를 드리고 취침앴습니다. 제 롬매이트는 플로리다에서 오신 정광현 목사님(Korean First Presbyterian Church of Ft. Walton Beach) 교대로 코는 골았지만 잘 쉬었답니다.

 

<터키 개요>

*민족성-자부심이 강함, 거리에 거지가 없다. 순진하고 온순하며 큰 욕심이 없다. 교육열은 낮은 편임. 손님들에게 차(tea)를 열심히 권한다, 체면문화, 여유가 있음.

*크기:남한의 8배(78만 ㎢)-유럽 쪽 대륙에 속한 영토는 3%에 불과하고 나머지 97%가 아시아 대륙, Silk Road의 끝이 아시아 이스탄불, 유럽 이스탄불 기차역에서 러시아, 영국으로 갈 수 있다.

Istanbul에서 동쪽 끝 Ararat산지(오늘날 Buyok Agri Dagi, 5,137m)육로로 32시간 운전. Eden의 두 강인 Tigris(힛데겔), Euphrates(유브라데)의 발원지가 아라랏산지. 유프라테스강의 발원지 Firat Nehri, Ataturk Baraj 댐. 밧단 아람(창 24:3-43, 28:1-2)인 Harran은 1923년 독립 후 10년간 중립지역으로 지내다가 자체 투표해서 터키에 소속하기로 함.

하란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그발강)<발원지-아라랏산>이 만나는 지역, 곡창지대, 산유지, 터키가 10년간 이곳에 댐을 만들었다.

초대교회시절에는 Edessa로 불리웠고 동양 기독교의 본산지 역할을 하였다. 구약시대에 호리족(Hurran)이 살고 있었다. 밧단 아람(Paddam-Aram)이라고 불렸다. 야곱이 20년간 살았던 라반의 집이 있었다. 그래서 리브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Harran(후리족)에 해발 540미터에 있는 Urfa는 아브람의 이름도 갈대어로 오르함. 이곳에  욥이 7년간 상피병과 문둥병으로 고생하며 치료를 받기 위해 몸을 씻은 샘이 있다. 그는 7년간 심한 피부병(악성 문둥병 pauperized leper)으로 고생을 하였다.(Job of Urfa, Huri족의 수도인 Urfa근처에 있는 마을 Nebiyob에 욥과 그의 아내의 무덤이 있다) 하란은 1260년 몽고의 침략으로 도시가 파괴됨.

 

*위치:북쪽으로는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서쪽으로 불가리아와 그리스, 남쪽으로 시리아, 동쪽으로 이란 및 이락과 접경, 흑해 및 에게해, 지중해 등으로 둘러 싸여 있음. 보스포로스 해협(30 km)이 동서를 가르며 유유히 흐르고 있고 두 개의 다리(1.1km)가 이어준다. 하나는 1973년 영국, 독일인이 완성<일명 유라시아 대교>, 다른 하나는 1986년 일본인이 건축. 그래서 이곳 터키인들은 일본을 존경한다. 세 번째 다리를 놓을 계획 중이다. 중국 서안에서 시작되는 비단길(silk road)은 고비사막과 천산산맥사이 (위구르 지역)를 지나 이스탄불에서 마지막 장식. silk road(갑바도기아 통과)는 47km마다 카라반 saray가 있다.

 

*한국참전 - 터키는 북한의 남침 1주일 뒤 국회에서 한국파병을 결의, 53년까지 3개 여단 1만 4936명의 병력을 파견함. 참전국 16개국 중 6번째로 많은 병력 보냄. 721명 전사, 2176명 부상(이중 175명은 이미 사망, 22명은 아직도 심각한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음), 토이기군은 후퇴가 없다. 휴전직전 압록강까지 맨먼저 진격하다. 특히 51년 1월 금양장리 전투에서는 3개 대대가 북한군 1사단을 완파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중공군에게 1연대가 포위됨. 1대대가 전멸한 적도 있다. 가장 열심히 싸운 군인. 수도 앙카라에는 파고다 공원이 있는데 한글로 ‘파고다’로 새겨져 있다. 당시 군인들이 자기들의 민요 소개 ‘위스크달 다리를 건너니 비가 오네...떠나가는 님을 향하여 흰 손수건을 흔들며 떠나는 마음 아프구나’ 낭만적 분위기 Üsküdar(위스퀴달) 다리가 있다. Chalcedon이다. 이 노래를 한국인은 ‘위스키 달라, 소주 달라’로 부르며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듬. 지금도 터키인은 한국전 참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국과 터키가 형제의 나라임을 강조한다.

 

*국민 생활력-GNP $ 2,400.00(그러나 생활수준은 5,000불정도), 빈부차이가 심하다. 아직까지 1차 산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나 섬유와 철강업이 활발하고 관광수입이 연간 100억불에 이른다. 직업이 많지 않아 아침이면 남자들이 모두 집을 나와 시내 중심가를 헤매며 노동직을 구하기 위해 애쓰나 대부분 허탕이다. 자동차를 좋아하고 난폭하게 운전하는 편. *풍부한 자원-넓은 땅, 터키석, 풍부한 지하자원, 양면, 가죽제품, 카펫, 면제품, Cilicia 평야(밀, 과일) 중동에서 최대 땅은 사우디아라비아, 2등 이란, 3등 터키 오늘날 레바논에 가면 백향목이 더 이상 없다, 터키 다소근처 토로스산(갑바도기아 지역으로 향하는 길)에 가면 백향목이 자람.  1000년생,  벌레가 먹지 않음. 피아노를 만들면 좋은 소리. 백향목 비용이 너무 비싸다.

 

*종교-헌법이 자유를 보장하나 이슬람 종교법을 더 잘 지켜, 기독교 선교를 법적으로 못하게 되어있다. 모든 선교사님들은 학생이거나 직업을 가지고 있다. 지상사 직원, 과학 비디오 판매 지상사, 학원 강사, 간호사, 대학 강사 등/1827년 미국선교사가 들어와 선교 시작했으나 열매는 많지 않다. 기독교 인구는 전인구 0.2%인 500만정도 추산. 요즘 대학생들 중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더러 있다. 미나렛트(사우디 메카를 향하여 기도하는 방향표시, 2개 이상 있으면 선생이 있다는 표시) 6개 있으면 본부(블루 모스크). 이스탄불에는 53개의 파티자미(교회가 사원으로 바뀐 건물)가 있다. Muslim뿐만 아니라 터키에 사는 사람은 의무적으로 종교세 수입의 1/40을 낸다. 공립학교에서는 반드시 고전 꾸란(Qu'ran)경을 배워야 한다.

 

*기후-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은 고온 건조, 겨울(10말-3월초)는 저온, 다습, 연평균 기온은 13.8도, 평균습도 73%, 평균 강우량 668.2mm *인구-7500만 명 중 도시인구가 65%(이스탄불 1600만, 앙카라 360만, 이즈미르 310만) 인구증가율 2.19%. 인종은 대부분 터키족이며 (서이족, 우리는 동이족, 夷는 오랑캐 이 보다는 귀족 이. 흉노족의 조상. 만리장성이 흉노족을 막기 위해 건설됨, 지금도 중국 신강성에 흉노족이 800만 살고 있어 소수 민족으로는 최대의 숫자. 쿠루트족(인구 1/5정도) 400년간 나라 없음, 하란지방을 달라고 조르다/ 대개 무식, 터키화 됨. 자기 언어가 없지만 자존심이 강하다. 아르메니아족, 아랍족, 그리스족, 유대족이 있음.

 

*언어-우리와 같은 어족인 우랄 알타이어계의 터키어 사용. Finnish, Hungarish,  Korean, Turkish 보스포러스-보아지-모가지, 호박-하박, 이네-곧,금방,차-차이, 물 - 수,  꿀 - 발(벌 ?). 문자는 영어, 독어, 불어를 혼성하여 알파벳 식으로 비슷하게 만들어 사용, 발음기호 없고 그냥 읽으면 된다. 안녕하세요=Merhaba(멜하바), 감사합니다= Tesekkürler(테쉐큐렐), 안녕= Selamlik (세람릭), Giris = entrance, cikis = exit, 인솰라(아랍어) - 신의 뜻대로, bay 남, bayan 여(Toilet), kilise 교회, iSA 예수, Pavlus 바울 *유대들이 많이 사는데 이들은 자국으로 많은 돈을 보내고 있다. Diaspora Jews가 수리아 안디옥, 다소, 서머나, 에베소 순으로 퍼져 살고 있었다.

 

*특산물-비단 카펫(silk carpet), 구리, 대리석, 얼룩마노(onyx). 나무 값 보다 대리석이 더 싸다. 밀농사(길리기아지방 중심)해서 전 유럽을 먹여 살림, 산유국 (그러나 주로 이란이나 이락 등으로부터 사서 사용)

 

*이스탄불 Istanbul(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120여 황제의 수도 이스탄불 istanbul(“city of Isram”)-It is situated on the shores of the Bosphorus, and is bordered to the north by Kara Deniz(the Black Sea 黑海라 함은 깊어서 검푸른 바다임) to the east by the region of Kocaeli and Marmara Denizi(Sea of Marmara 海峽, 외우기 쉽게 ‘말을 마라’). Ege Denizi(Aegean Sea), Akdeniz (Mediterranean Sea) The largest city in the Republic of Turkey. 1300만/

전체 인구 7500만 silk road 종착역-캐라반 사라이(주막집) 47km마다 있음; silk road가 지나간 자리에는 중국 영향으로 동양 집처럼 생긴 집이 많다.  육로 말고 해상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향하게 되어 있다. 여기서 출발. 토인비의 표현대로 이스탄불의 옛 도시 지역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동서양이 만나는 곳(보스포루스 해협을 중심으로 동쪽은 아시아(9/10), 서쪽은 유럽(우리나라 충청남북도만한 넓이)이다. 이 두 대륙을 지난 1973년에 완공(영국 기술진, 2차 다리는 1986년 일본에 의해)된 보스포루스 대교가 이어주고 있다.

 

예루살렘과 로마와 더불어 기독교 3대 역사도시.

500년부터 오늘까지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의 수장(首長)인 콘스탄티노플 대주교가 있는 곳이다. 유세비우스(교회사의 아버지)에 의하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2년 10월에 당시 로마 제국 황제의 자리를 두고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 사이에 역사적인 대결이 벌어졌다. 운명의 결전이 있기 바로 전날 정오. 큰스탄티누스는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았다. 십자가였다.  광채가 나는 십자가에는 ‘이것으로 승리하리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다음날 벌어진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는 크게 승리했다. 320년대 그는 로마 제국 황제에 올라 천하를 통치했다. 기독교를 공인함으로 수난과 박해, 순교의 시대를 종식했다. 그는 로마제국을 동방으로 영토를 넓혀나갔다. 광대한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지리적 중심지에 새로운 수도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정한 곳이 비잔티움이었다. 그는 6년간에 걸쳐 그곳에 제국의 수도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신도시를 건설했다. 330년 장엄한 의식과 함께 천도(遷都)하여 새 수도의 이름을 ‘신 로마’ (Nova Roma)라고 공식적으로 명명했으나 사람들은 황제의 이름을 따라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라고 불렀다. 이로부터 콘스탄타노플은 15세기 중엽 오스만 터키 군대에 함락될 때까지 약 1,100년 동안 비잔틴제국(동로마 제국)의 수도이자 동방정교회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래서 이스탄불은 세계1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약 1,600년 동안 세계를 제패했던 3개 제국 (동로마, 비잔틴, 오스만 터키)의 중심수도로서 무려 120여 황제들이 이곳에서 세계를 향해 호령을 했던 황제의 도시이다.

 

1453년에 오스만 터키 군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함으로 비잔틴 제국은 막을 내렸다. 동로마제국의 수도(330-1453, 1132년간)로 영화를 누린 도시가 53일 만에 허무하게 붕괴하고 말았다. 이 성을 함락시킨 오스만 제국의 메메트(Mehmet) 황제는 제일 먼저 소피아 대성당으로 달려갔다.

 

①소피아 교회(아야 소피아, Haggia-Sophia or Sancta Sophia; Theodosischen Sophien-Kirche, 404-415 AD) “하나님의 지혜(Divine Wisdom)”이란 뜻. 비잔틴 시대 건축예술의 절정을 이룬 교회 건물이다. 기독교 공인 후 초대교인들의 소원인 성전건축이 시작되었다. 이교회는 최초의 기독교 교회인데, 건축자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당시 기존하고 있던 희랍 신전 위에 교회당을 지었는데, 신학적인 의미는 만유의 하나님은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난다는 것이다.

 

381년 교회 공회의가 열렸다. 6세기 중엽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명으로 건축되었다. 건축 왕이었던 이 황제는 성지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예수 탄생교회를, 시내산 기슭에는 성 카타린 수도원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보다 더 아름다운 딸’이라는 목표로, 콘스탄티노플을 로마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기로 마음먹고 소피아 대성당을 건축하였다. 높이가 56미터(약 17층 빌딩높이)에 달하는 교회가 완성되었을 때 황제는 그 황홀한 아름다음에 도취되어 탄성을 질렀다고 한다. ‘솔로몬 왕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소!’ 이 대성당은 천장을 둥근 돔(Dome)으로 만들어 교회건축 양식에서 새 장을 열었다. 중간에 기둥을 세우지 않지만 둘레에 있는 기둥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모두 무너지게 되어 있다(지체 원리 이용; 교회에서도 교인 하나가 무너지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무너짐). 특히 내부 벽면에 모자이크 성화로 장식하였다. 모두 금으로 입혔는데 금 160톤이 들었다고 한다. 천장 문양 중 물고기가 있다(초대기독교인이 건축한 흔적)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오스만 제국의 메멧 황제는 제일 먼저 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할 말을 잊었다고 한다. 웅장한 아름다움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슬람 교도였으나 이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보관했다. 그러나 이슬람교를 따르던 오스만 제국 밑에서 이 교회는 이슬람교의 사원(Mosque)로 바뀌게 되었다. 십자가 대신 초생 달로 대체되었고, 교회 안에는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기도처도 만들었다. 밖에 4개의 미나렛이 세워졌다. 모자이크로 된 기독교 성화는 회칠을 해서 지워버리기는 했지만 성화들을 부수지 않았다. 오늘날도 여전히 이슬람교의 모스크로 남아 있는 소피아 교회 안에서는 1931년 이래 68년간 성화 복원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워낙 정밀한 기술과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현재도  복구 작업 및 보수 작업이 계속 되고 있다. 이 교회당은 자연공명이 잘 되며, 햇볕도 사방에서 들어와 어둡지 않다.

 

 ‘황금의 입’(golden mouth)라고 불리는 명설교가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c. 347-407)이 안디옥(Antioch)에서 집사(381-386) 및 목사(386-398)로 봉사 하다가(수리아 안디옥이 고향, 누가와 함께 신앙생활하며 자라다. 이곳에 감독(patriarch of Constantinople)으로 부임했다.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8,000석의 본당이 만원을 이루었다. 그의 재임시절(9년간, 398-407) 종교회의를 몇 번 개최하여 이단을 정죄하고(단성론자 정죄) 순수복음을 지키도록 노력했다. 회의 후 선언서를 교회 현관에 붙여 두었다. 회의 도중 성도들은 발코니에 모여 공의회를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황제가 앉는 자리를 치워 버려 만인제사장설을 주장. 황제인 Eudoxia로부터 미움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일반석에 앉아 있다가 설교할 때만 단에 올라갔는데, 단의 높이는 낮다. 그는 근면, 정직, 언행일치했다. 황제로부터 미움을 받아 추방, 박해, 순교 당했다. 칼빈도 양 무리 중 하나임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림.

 

이 건물의 전체 힘을 지탱해 주는 머리돌(cornerstone, the head of the corner = keystone)이 있는데, 바로 교회의 기초석이다. 건축물이 여기에 힘을 모아 지탱해 주는데 교회 건물 군데군데 있다. 이 교회에서 러시아 정교회와, 헬라 정교회가 분열되었다. 6세기 유스티니안 황제의 명으로 모임. 787년 제 7차 종교회의 장소

 

② 블루모스크(Blue Mosque)-가장 큰 모스크,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모스크, 과거 성당건물인 듯, 구약시대 성전을 이해하는데 도움, 지성소, 성소, 물두멍(손과 발, 얼굴을 씻음), 성전 안 시장, 성전 바깥뜰, 6개의 미나렛(본부)

 

③ 히포 드롬(Hippodrom)-원형경마장 흔적, 스탠드 흔적이 있다. 벤허 영화가 여기에서 착상되었다고 한다. 지금 여기에 obelisque가 서 있다. 또한 비스마르크 황제가 준 선물을 기념하는 정자가 서 있음.

 

④ 토카프 궁전(Topkapi Palace) Toplukapi-오스만 터키 제국의 황제들이 살았던 궁전이다. 1462-1478년에 지어졌다. 1866년에 새 궁전인 돌마바체궁전으로 옮겨 갔다. 제국이 몰락하고 1923년 터키 공화정이 수립된 후 이 궁전은 고스란히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석과 보물이 소장되어 있어 오스만 황제들의 영화와 사치를 잘 보여준다. 매번 1/3만 공개함,  86캐럿 다이아몬드(세계 최대)가 보장되어 있다. 4000명이 살고 있었다. 가마솥에 국 끓이고 밥을 지음, 코란경 모집, 큰 주방, 주방기구, 보석함, 각종 도자기, 접시(중국, 일본, 등 각국에서 선물 받음 - silk road를 따라). Sultan III(18세기 중엽 통치) emerald - 3kg (largest in the world), Muhanned의 수염털, 발자국도 보관 - 전설에 근거함, 이 궁전 입구에 Ireni Church (3000명 수용, 공명시설이 잘됨) - 성가대석이 강단 뒤에 있음

 

⑤ 돌마바체(돌마=‘둥근’ 바체=‘정원’ Dolmabahce) 궁전(Sarayi)-19세기 중엽 황제는 세계 궁전 중 가장 화려한 궁전으로 지었으나 60년 후에 오스만 제국이 멸망당했다. ‘절제할 줄 모르는 사치와 허영이 몰락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교훈을 남겨주었다. 1843-56사이 13년간 지었다. Abdülmecit가 이 새 궁전으로 입주함.(He said, “The palace was too expensive and could have been built less extravagantly.”) Seaside Palace. 52개 crystal,(4.5톤 Irish 상드리에가 가장 큼), 280개 방, 50개 살롱, 63개 화장실, 6개 터키식 목욕실(bath), 1400개 창문, 24개 출입구, ceramic으로 건축, 200여 화가가 직접 그림을 그리다(불란서, 이태리, 일본 등에서), 고린도양식-기둥처럼 세로로 길쭉; 이오니아 양식-위의 문양이 곡선, olive식; 벽난로-불란서에서 특별 주문제작. Golden salon-정상회담 장소(16톤 금으로 천장 칠해짐) 2.5톤 아일랜드 상드리에. 헤레트 카펫(hand-made carpet), 사우디 왕이 시계선물(166개 언어로, 금색), 러시아왕이 곰 박제 선물; Red Hall-황제 휴식처; Celebration Hall-남녀가 함께 교제, 휴식장소; 욕실-alabaster로 물이 은은히 비치다; Reception Hall-왕과 대신들의 잔치자리(4.5톤 상드리에, 720개의 램프)-2000 sq feet, 32m 높이, 화가가 직접 그림을 그리다

 

⑥ 로마성벽:비잔틴 시대 때 건축됨

 

⑦ 그랜드 바자(Grand Bazaar)-약 5000개의 상점이 있어 수공품, 기념품, 식당, 우체국, 관공서 등 바자르(市場)에서 바자회란 말이 나왔다.

 

⑧ 칼케돈 (Chacedon, 현재 카드퀘이 Kadiköy)-위스퀴달 근처에 있다. 유티케의 단성론자를 축출 하고 양성론을 확립하다(451년). 451년의 칼케돈신경(The Chalcedonian Creed)은 삼위일체의 교리를 체계화한 위대한 문서들이다.  

 

⑨ 이즈닉/니케아(Nicaea)-이즈닉 호수 가까이에 있으며 B.C. 301년 알렉산더대왕의 후계자인 안도키자 아내의 이름을 따서 니케아로 명명하였다. 주후 325년 1차 공회의(Ecumenical Council)이 열려 아리안을 이단으로 결정,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확립하였다. 325년에 채택된 니케아신경(The Nicene Creed)은 318명의 교계 지도자들이 모여서 초대교회의 신론을 체계화한 것으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리우스(Arius)가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다. 아리우스는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일종의 양태론을 주장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는 다른 존재로서, 피조된 존재이기에 성부와 동일한 신성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일어나서 성경에 명백히 언급된 성자와 성부의 동일 권위와 신성을 공박함으로써 삼위일체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진일보하게 되어졌다.

 

물론 니케아회의 때가지만 해도 성령에 관한 논쟁이 없었다. 니케아 회의를 통해서 삼위일체의 한 분 하나님을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의 논쟁이 있었다 무엇이 아리우스로 하여금 성자에 대한 이단적 사상을 갖게끔 하였는가? 아리우스는 지적 엘리트라는 자부심에 사로잡혀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새로운 철학적 진술들을 펴고자 하였다는 데 문제가 있다. 마치 루돌프 불트만(R. Bultmann)이나 한스 큉(Hans Kung)과 같은 현대 신학자들이 자꾸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철학적 사고에 깊이 영향을 받아 버린 결과와 같다. 아리우스는 성부 하나님 외에 성자나 성령이나 다른 모든 여타의 존재들은 동등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성자는 성부에게서 낳았다(begotten)고 했으니, 이는 달리 표현하면 창조된 것이다(created)고 해석하였다. 따라서 피조물(creating)의 위치에 있으므로 경배를 받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것이다. 아리우스는 니케아 회의에서 정죄를 받았으나 금욕적 생활로 자신이 거주하던 알렉산드리아서 존경을 받았던 까닭에 자연적으로 수명이 다하여 336년에 사망하였다. 핍박이나 물리적 사형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죽기 전에는 거의 모든 명예나 지위를 회복할 정도였다고 한다.

 

아리우스와 같은 사상은 훗날 미카엘 세르베투스(Servetus, 1511-1533)가 다시 들고 나와서 장 깔뱅을 괴롭혔고, 끝내 회개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고서 시 의회의 결정에 따라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또한 소시니안파(Socinians)로 불리는 일단의 무리들에 의해 삼위일체가 거부되었고, 성장의 신성이 도전을 받았다. 16세기에 인간의 자기 능력 속에는 구원받을 만한 공로가 남아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니, 개혁자들이 명성을 날리던 시대에도 역시 이단들의 활동은 집요하였다.  19세기 초 미국의 동북부, 뉴 일글랜드 지방에서 역시 단일신교(Unitarians)라는 사상이 유포되어 하버드대학교의 신학부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초대교회 4대 학파

(1) 안디옥학파 - 수리아 안디옥 중심으로 가장 성서적이고 정통적인 신학 고수함, 훗날 동방 정교회, 동양 기독교의 산실로 콘스탄티노플 소피아 교회가 중심, 에뎃사(과거 하란)는 동방 기독교의 중심지. 이그나티우스, 크리소스톰, 네스토리우스 등

 

(2) 갑바도기아 학파-가장 보수적임, 니케아 신조 만드는데 공헌, 3인 학자(바실 Basil 330-379, 니사의 그레고리 Gregory of Nyssa 335-94, 나자아누스의 그레고리 Gregory of Nazianus 33-99) 들의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순수한 믿음을 지켰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동일 본질을 고수. 바른 삼위일체 신학을 정립하는데 공헌했다.

 

(3) 알렉산드리아 학파-오리겐, 클레멘트. 마리아 숭배론에 빠짐, 로마 캐톨릭의 신학 만듬

 

(4) 라틴계-로마 캐톨릭 신학을 낳음

 

*초대교회 시대의 5대 도시: (1) 예루살렘 (2) 안디옥 (수리아) (3) 에베소 (4) 서머나 (5) 콘스탄티노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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