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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기 그리스 성지순례기(7)-데살로니끼를 거쳐 까발라까지

2008.04.10 01:15

윤사무엘 조회 수:1630 추천:67

아홉 번째 날(4월 2일, 수)  화창하다가 저녁에는 흐림, 데살로니끼를 거쳐 까발라까지, 10-20도.

 

조반 후 숙소에서 아침 예배(김옥기목사님 설교) 후 계속 북상하였다. 데살라(Thessalo) 지방을 지나면서 넓은 들에 농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올림푸스 산맥을 지나면서 페르샤 군대와 전쟁을 한 스파르타 군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올림푸스 산은 해발 3400미터 고도로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에게해를 저멀리 바라며 산맥을 왼편에 보니 매우 높은 산이다. 산맥을 지나니 마게도니아 지역에 들어섰다.

 

Meteora 지역 수도원을 방문했는데, 높은 암벽 위에 수도원을 세우고, 또 암벽 중간 중간 굴에서 수도하던 24개 수도원 중 지금은 6개 수도원이 사용되고 있단다. 절경이며 그리 높은 곳을 밧줄을 타고 오르내리던 수사들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나게 했다. 제일 큰 수도원에 들려 세밀하게 살폈다. 더욱 경건의 훈련을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고 나니 오후 3시이다.

 

여기서 데살로니카(현지발음 데살로니끼)까지 2시간 반을 달렸다. 인구 150만의 큰 도시이며, 이곳에서 가장 큰 정교회인 데메트리오스 성당을 살펴본 후 다시 2시간을 달려 밤 9시 30분에 오늘 숙소인 네압볼리(현지명 까발라)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여 저녁식사 후 그리스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야밤에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5불)을 하였다.

 

마게도니아 지방: 바울의 2차 선교여행지역 오늘날 그리스의 북방지역을 마게도니아(Macedonia)라고 부른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은 오늘날 터키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많은 어려움이 있어 바울일행은 발길을 서편으로 돌려 드로아(Troas)에 다다랐다. 드로아는 소아시아 서쪽 끝에 있는 항구였다. 호머의 작품 <일리어드>의 트로이 전쟁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려고 계획했을 만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요한 항구도시였다. 드로아에는 로마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다. 10km에 달하는 성벽, 야외 원형극장, 로마식 수로 등이다.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에게 해를 건너면 마게도니아 지방이 된다. 로마제국은 오늘날 그리스를 북부의 마게도니아 지역과 남부의 아가야 지역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① 데살로니가-마게도니아 지방에서 최대의 도시이다. 현지 발음은 데살로니끼이다. 바울서신 가운데 가장 먼저 보낸 곳이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였다. 신약성경 가운데 제일 먼저 정경이 된 데살로니가 전서 1장 3절에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있었던 모범적인 교회로 칭찬 받고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의 교훈을 주었던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한다.

 

데살로니가는 알렉산더의 이복 누이동생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알렉산더의 휘하 장군이었던 카산더(Cassander) 장군과 결혼했다. 알렉산더가 죽자 부하 장군들끼리 권력 쟁취에 열을 올리던 중 카산더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알렉산더의 어머니 올림피아 대비를 죽였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알렉산더의 부인 록사와 왕비, 그의 아들까지 모두 죽였다. 민심이 그로부터 멀어지자 카산더는 수습책의 하나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자기 부인의 이름으로 명명한 것이 바로 데살로니가였다. 로마시대 때 마게도니야 지역의 정치적 중심도시였고, 비잔틴 시대에는 콘스탄틴노플에 버금가는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바울 당시에 유대인의 회당이 도시에 있었다.

 

빌립보를 출발한 바울 일행은 에그나티아 대로를 따라 서쪽으로 향했는데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도착했다’ (행 17:1) 암비볼리(Amphipolis)는 빌립보에서 50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공회당과 말마차경주장까지 있었던 큰 도시였으나 지금은 수 백 명의 인구가 사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마을에 바울 교회라는 작은 교회가 있어 바울의 자취를 기념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40km 정도 서쪽으로 가면 큰 호수가 있고 뒤이어 호숫가 마을 아볼로니아(Apollonia)가 나온다. 여기서 계속 서쪽으로 60km 달리면 데살로니가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까지 160km이며, 아테네 공항에서 비행기로 50분 소요된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 일행은 전도의 많은 성과를 거둔 반면에 유대인들의 반대와 저항도 심하게 받았다. 바울 일행에게 숙소를 제공했던 야손 일가는 큰 변을 당했고, 기독교인들은 황제이외 다른 왕을 섬기는 자들로 고발을 당했다. 바울과 실라의 신변을 걱정한 교인들은 밤중에 바울 일행을 서쪽에 위치한 베뢰아(보다 신사적이고 말씀공부에 주력함)로 피신시켰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한 기간은 길지 못했어도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다. 그래서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역사적인 교회들(1000년 이 넘음)이 20여 곳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교회가 410년에 건축된 ‘성 데메트리우스 교회’이다. 콘스탄탄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직전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를 기념하는 교회로 데메트리우스가 순교한 장소에 서 있다. 1917년 이 지역을 휩쓸었던 대화재로 교회가 크게 파손되어 현재 건물은 후에 복원이 되었으나 지하부분은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많은 모자이크 성화 중에 데메트리우스를 그린 5편의 작품은 이 교회의 자랑이다.

 

열 번째 날(4월 3일, 목)  화창하다가 차차 흐림, 5-20도, 빌립보에서 입살라 국경, 터키 이스탄불로 돌아오다 오늘은 성지순례 마지막 날이다. 내일 새벽에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참으로 피곤한 일정인데도 우리 일행들은 협조를 잘 하신다.

 

오늘은 조반 후 빌립보 지역을 살폈다. 바울이 루디아를 만나 전도한 기념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정목사님 설교)와 세례터(강가) 및 빌립보 옛 도시터와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감옥에 가서 기도회를 가지고, 원형극장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낸 후, 바로 국경으로 출발하였다. 예정보다 1시간 늦게 도착하였고, 우리가 탄 차가 33명인데 직원이 잘못 세어서 34명이다고 우기는 바람에 30분 지연되었다. 앞차가 오래 기다려 주었다. 다시 최평화 장로님을 반갑게 만났다. 국경을 지나 점심식사 후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했다. 가면서 마무리(정리) 강의를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탄불 호텔(첫날 지낸 호텔)로 돌아왔고, 폐회예배를 드렸다(유목사님 설교, 행 28:30-31). 그리고 마지막 밤을 지냈다. 내일은 새벽 2시 반에 일어나야 했다. 하나님 지금까지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① 네압볼리(Neopolis 'New City'-현재 명은 ‘카발라‘(Kavala)이다 성령께서 소아시아에서 더 이상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니, 바울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이에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에 가서 유하는데 바울은 밤에 환상을 보게 되었다. “마게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9) 하여 바울은 생각하기를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 16:10)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섬으로 가서(아마 이 섬의 북서쪽에 있는 가마리오티사 항구) 하루를 유하고 이튿날 네압볼리(Neapolis)로 도착하였다. 285km를 항해한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기독교 유럽 전파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이때가 AD 50년경으로 추정된다. 네압볼리 항에는 해변 부두를 지나는 길 이름도 ‘바울로’로 되어 있어 바울의 도착을 기념하고 있다. 바울 당시 이 항구는 마게도니아 지방의 중요한 교통 요지였다. 로마로 향하는 Via Egnatia 가 이곳을 지나고 있었다. 소아시아에서 배를 타고 이 항구에 도착한 이들은 에그나티아 대로를 따라 목적지로 흩어져 갔다. 바울 일행도 이 길을 따라 16km 떨어진 빌립보에 도착하였다. 지금은 이곳의 이름이 터키 통치 시대부터 카발라로 불리고 있고, 인구 8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 활기찬 항구도시이다. 현재 마게도니아 지방에서 데살로니가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16세기에 건설된 성채가 산 위에 있다. 비잔틴 시대의 성벽 일부도 남아 있다. 특히 고고학 박물관은 그리스에서도 유명하며 특히 근처 빌립보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이곳을 순례할 때 꼭 들려야 하는 곳이 바울 기념교회이다. 희랍정교회 소속이다. 지금도 소수의 교인들이지만 예배를 드리고 있다.

 

②빌립보-최초의 유럽 교회가 설립된 곳 빌립보서는 4장으로 된 서신으로 바울의 서신 중 사랑의 훈훈한 향기가 나는 편지이다. ‘항상 기뻐하라. 주안에서 기뻐하라,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로 이 서신을 받았던 빌립보 교회는 유럽 선교에서 첫 교회라는 의미가 크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네압볼리 항구에 내려 에그나티아 대로를 따라 서쪽으로 16km 떨어진 빌립보에 도착하였다.

 

바울 당시 빌립보는 네압볼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으며,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Philip) 왕이 이 도시를 건설한 뒤 자기 이름을 따서 빌립보(Philippi, 뜻은 philia+ippo 말을 사랑함)라고 지었다. 42 BC 에 카이사르의 등에 비수를 꽂는데 가담했던 부르터스는 빌립보 전투에서 참패한 뒤 자결하였고, 이 전투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라가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가 되어서 이 도시는 유럽의 역사를 한번 바꾸어 놓은 역사적인 도시가 되었다. 누가는 이곳이 ‘로마의 식민지’라 적고 있어(행 16:12) 헬라 문명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었다. 1910년부터 지금까지 프랑스 고고학 팀이 발굴한 야외 원형극장, 시장터 아고라, 공회당, 신전들, 많은 돌기둥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당시에 대도시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현재는 고대 도시를 가운데 두고, 그 좌우에 크리니데스와 리디아 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과 실라는 몇 날 동안 지내다가 안식일이 되어 회당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회당이 없으면 흔히 강이 있는 곳에 기도 모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성문밖에 흐르는 간지테스 강가에 나가니 몇 명의 여인들을 만나게 되어 복음을 전했다. 이 중 한 여인이 루디아였다. 그는 소아시아 지방 두아디라(소아시아 7교회 중 하나가 있었던 지역) 성 출신인데 두아디라는 자주색(왕궁에서 사용하던 색깔)으로 물들인 고급 직조물 산지로 유명하며, 루디아는 자주색 옷감을 빌립보에 가져와 장사를 하여 경제적으로 부유하였다. 루디아가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음으로 교회사 가운데 유럽의 첫 크리스찬 가정이 되었다.

 

지금도 이들이 세례를 받았던 간지케스 강변에는 루디아를 기념하는 교회가 서 있다. 아담하고 정감이 넘치는 희랍정교회이다. 내면 전면에 바울과 루디아를 그린 색유리로 장식되어 있다. 바울이 점쟁이 주인에서 고소당하여 억울하게 투옥되어 심한 매를 맞고 갇힌 감옥 터가 있다. 바울과 실라가 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니 빌립보 지역에 지진이 일어났다. 옥문이 열리고 묶였던 쇠사슬이 풀어져서 졸다가 놀란 간수가 죄수들이 모두 도망한 줄 알고 자결(자살)하려다가, 바울이 소리치며 ‘네 몸을 상하게 말라’고 하니, 도리어 간수가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을 꿇고 ‘선생님들, 제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 하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하여 그 밤에 간수와 온 가정이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다. 이리하여 빌립보 교회가 시작되었다.

 

③ 발칸반도 북쪽까지 선교 디도(Titus)는 바울이 파송한 최초 선교사-달마디아(Dalmatia, 딤후 4:10)에 파송 (오늘날 보스니아-사라예보Sarajevo), 유고슬라비아 (Belsade), Thrace(Bulgaria), Macedonia(Thessalonica), Achaia (Corinth) 열 한번째 날(4월 4일, 금)  흐림, 약간의 비, 이스탄불 공항에서 암스테르담, 여기서 헤어짐 새벽 2시 반에 기상하여 3시 20분에 숙소를 떠나 공항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새벽기도회를 인도했다 (시 23:1-6, 오늘도 나의 목자되시옵소서). 공항에서 탑승수속을 하고, 최장로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5시 35분 정시에 출발하여 암스테르담(1시간 시차)에 도착하여 각 지역별로 작별을 나누고 나는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탑승하였다. 비행기 타고 오면서 내내 감사기도를 드렸고, 열흘간 정이 들었던 목회자들과 성도들과 헤어짐에 섭섭하였다. 주님의 크신 사람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부상당하신 권사님들 속히 쾌유하게 하시며, 속이 불편하여 비행기에 오르신 권사님도 건강케 하옵소서,  살롬 주안에서, 살롬 윤사무엘 목사 씀 (참고로, 해당 성지순례 사진을 보시기 원하시는 분은 제 홈피 www,samuelyun.com 에 들어오셔서 홈페이지 우측 상단에 성지사진을 클릭하셔서 카테고리에서 해당 지역을 클릭하시면 사진들이 게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