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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세 쌍의 십자가

2008.02.24 09:39

김성찬 조회 수:3542 추천:85

믿음의 화가 홀만 헌트(Holman Hunt)의 ‘나사렛 목공소 앞에 서 있는 소년 예수(Jesus at the door of the carpenter's shop in Nazareth)’라는 성화가 있습니다. 그 성화는, 아버지 요셉의 목공소에 앞에서 석양빛을 받으며 소년 예수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 작품의 압권은  바로 그 소년 예수를 투사한 황혼 빛이 그 뒷벽에 십자가 그림자로 남는 그림입니다. 그리고 그림 배경인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 그림자 십자가를 발견해 내곤 조요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림입니다.


황혼 빛에 투사된 소년 예수의 숨겨진 십자가.


저는 어젯밤에 제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전전긍긍, 신음도 발할 수 없는 아픔에 찔려 몸부림치는 두 분의 목회자들과  ‘숨겨진 십자가의 고통’을 눈물로 함께 나누었습니다.


네 식구 함께 자리할 방 한 칸 없는 모진 가난에도 꿋꿋이 숨겨진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후배 목사의 피로 얼룩진 속울음을 목도했습니다.


그는 신용불량자입니다. 그 아내도 신용불량자입니다. 그의 큰 아들도 신용불량자입니다. 그들이 몽땅 신용불량자가 된 것은 순전히 교회 탓입니다. 빈 손들고 시작한 교회, 빈손으로 나오는 가련한 성도들을 물심양면으로 돕다가 그만 그 수렁에 빠져 든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당장 알콜릭 환자인 그가 돌보는 성도들이 사고치고 영창에 들어 앉아 있는데, 그 합의금을 그 밖에 그 누구도 댈 수 없는 처지였다는 겁니다. 이런 댓가 없는 뒤치다꺼리가 거리의 부랑아들의 대부인 그의 숨겨진 십자가였습니다.


그의  아내는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단 하루 쉴 틈 없이 택시회사 세차장에서 중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상가 보증금 천만 원인데, 월세가 밀려서 그 유일한 교회 재산도 이미 날아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꿋꿋했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숨겨진 십자가를 꿋꿋하게 감당하고 있다는 말은, 그 두 아들을 반 강제적으로 신학교를 보낸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숨겨진 십자가의 고통을 그 두 아들들에게 세습한 것이지요. 그는 물질 앞에서도 당당했습니다. 20여 년 전 3백만 원(얼마나 큰돈인가)을 그에게 빚진 자가 그 3백만 원을 들고 엊그제 그를 찾아 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돈을 받지 않았답니다. 당장 궁색했지만, 그 3백만 원이면 모처럼 맛난 것도, 사글세도, 애들 등록금에도 긴히 보탤 수 있는 돈인데, 큰돈인데, 그는 그냥 그를 돌려보냈다는 것입니다. 그 때 내가 당신에게 빌려 준 것이 아니라 그냥 준 것이라서 절대로 받을 수 없다며.


이렇게 그는 당당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몇날 며칠, 몇 달째 앓아 누워있습니다. 피눈물을 쏟으며 혹한속에서 바르르 떨며 강단에 엎드려 있습니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 안정된 직장 다니다, 뒤늦게 정규 신학과정에 뛰어들어 만학도의 삶을 살아 왔고, 그 사명에의 결단을 허기진 목회 생활에서도 한점 후회해 본 적이 없는 그가, 제 가진 것 몽땅 교회를 위해 쏟아 부은 그가, 이 밤 끝내, 내 앞에서도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또 하나의 숨겨진 십자가를 지고 살아 온 병신 선배 목사에게 공개적으로 무시를 당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겉모습이 반지르르 하지 못해서 하여, 자신이 그런 병신이기에 이렇게 당하는 것이라며 아파했습니다. 신용불량자로 돈에, 사람에 쫓기는 피말리는 고통속에서도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던 그가. 이젠 만인 앞에서 스스로 병신이라 소리쳐 댄 것입니다. 부랑아들, 그 먹보와 술꾼들의 친구였던 예수처럼 그렇게 작은 예수로 남루한 공릉동을 살아 온 그 당당했던 그가 자신이 병신이라며 자조적 눈물을 흘려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니가 병신이냐? 내가 병신이지”
외팔이 선배 목사가 침묵을 깨고 욱하니 울분을 토해 냈습니다.


“왜 당신이 병신이냐고, 그것은 병신도 아니라고 내가 진짜 병신이라고” 그는 재삼 소리쳐 댔습니다.


순간, 중재에 나섰던 내게 그 병신들의 아픔 밀려들어 왔습니다. 그들을 통해 투사된 나도 병신이었습니다. 단 하루도, 안락이 친구 된 적이 없던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병신들이었습니다. 그 상처가 상처를 건드린 것입니다. 다 치료된 줄 알았는데, 상처는 흔적까지 지울 수 없었기에.

 

그가 울기 시작했고, 그 앞에 무릎 꿇은 외팔이 선배 목사도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울었습니다.

지난, 어둔 밤 10년 여 나의 위로가 되었던 그들 앞에서 나도 눈물지었습니다.


그 초라한 상가 교회당이 울먹거렸습니다.


숨겨진 십자가.

그 강단 벽에 세 쌍의 그 십자가가 선명히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믐 밤, 둥근 달덩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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